목록
※본 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은 국내외에 소개되어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관리자가 직접 자료를 수집후 정리한 내용입니다.
한국 인터넷에 잘못된 내용이 알려지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부득이 내용을 공개하고 있으나, 무단전제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대동류 분파 목록
현재 전해지는 대동류 관련 단체/무술을,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의 주요 제자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계속 업데이트 중)
히사 타쿠마(久琢磨) – 칸사이 아이키도 클럽(関西合気道クラブ) 계열 * 2024/4 업데이트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1916-1993) – 다이토오칸(大東館) 계열 * 2024/4 업데이트
마츠다 토시미(松田敏美) – 쇼오부칸(松武館) 계열 * 2024/4 업데이트
호리카와 코오도오(堀川幸道) – 코오도오카이(幸道会) 계열 * 2024/4 업데이트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 – 사가와 도장(佐川道場) 계열 * 2024/8 업데이트
야마모토 카쿠요시(山本角義) – 유진칸(柔進館) 계열
그 밖의 유사(類似) 대동류 – ‘합기(合気)’를 내세우지만 연원이 불명확한 단체들.
지역별 현황
지역별로 보자면,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 홋카이도(北海道) 지역 : 소오카쿠가 만년에 생활 기반을 두었던 홋카이도 쪽은 토키무네 계열, 마츠다 계열, 호리카와 계열, 카쿠요시 계열이 혼전을 이루는 양상
- 토오호쿠(東北) 지방 : 보쿠덴류, 토다류, 미조노구치파 일도류, 쇼쇼오류, 야규우신간류 등 다양한 고류 유파가 활동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대동류 계통의 활동은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토키무네 계열이 그나마 눈에 띈다.
- 칸토오(関東) 지방 : 수도권을 포함하고 있어, 토키무네 계열, 마츠다 계열, 호리카와 계열, 카쿠요시 계열은 물론, 사가와 계열, 히사 계열 등 모든 계열을 찾아볼 수 있다.
- 츄우부(中部) 지방 : 토키무네 계열, 마츠다 계열, 카쿠요시 계열이 각각 소수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 칸사이(関西), 츄우고쿠(四国), 시코쿠(四国) 지방 : 관서의 패자 라고 할 수 있는 히사 계열(나카츠(中津) 계열 포함)이 대부분이며, 호리카와 계열 등은 소수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 큐우슈우(九州) 지방 : 이 지역은 니시키도(錦戸)의 히카리도오(光道)를 중심으로 한 호리카와 계열, 그리고 마츠다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타케다류와 그 방계가 주로 활동하고 있다.
-
구 대동관(다이토오칸;旧大東館) 계열
-
- 타케다 소오카쿠의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1916-1993) 계열
- 다른 대동류 계열처럼, 대동관 계열 역시 타케다 소오카쿠, 타케다 토키무네가 만년을 지낸 홋카이도 지역에 비교적 도장이 많은 편이다.
- 토키무네는 아버지의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대동류를 통합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로 히사(久琢磨)를 본부장(本部長)으로 하여 히사의 문인들을 흡수하거나, 아버지에게 교수대리를 인가 받았던 마에 키쿠타로오(前菊太郎) 를 홋카이도 오타루(小樽) 지부장으로 하는 등 일부는 성과를 거두었다.
- 그러나 사가와(佐川幸義)는 총본부장(総本部長)직을 거절하는 등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고, 이후 토키무네의 와병과 사망을 기점으로 대동관은 여러갈래로 분열되고 만다.
- 대동류 기술들은 본래 따로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기술이 태반이었는데, 토키무네는 기술에 각각 순서와 이름을 붙여 정리하였고 이를 비전목록 118개조(秘伝目録百十八ヵ条)로 명명하였다. 이는 다른 대동류 계열에서도 인정하는 토키무네의 공적(功績)이라 할 수 있다.
- 비전목록 118개조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발급했던 비전서(秘伝書)임과 동시에 일종의 자격 증명서 역할을 했던 ‘대동류(합기)유술 비전목록(大東流合気柔術秘伝目録)’이라는 두루말이 문서[巻物]에서 따왔다.
- 토키무네의 제안을 받아들여 히사 타쿠마가 대동관에 합류함에 따라, 히사의 문인들은 대부분 토키무네의 대동관과 기술체계 및 명칭을 공유하게 되었다.
- 실제로는 대동류와 전혀 무관한 ‘서향파 대동류’가 토키무네 계열과 기술의 명칭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서향파 고유의 체계가 아니라, 서향파 2대 소가와(曽川)가 상술한 ‘니혼덴(일본전)’ 계열의 일부 지부를 흡수하며 토키무네가 정리한 기술체계를 참고하여 기술을 개편하였기 때문이다.
- 현재 대동관 계열은 토키무네 사후 대동관 지부장회의에서 본부장으로 추대된 콘도오 카츠유키의 ‘대동류합기유술 본부’, 종가를 자칭하고 있는 세 계열(아이즈 종가, 홋카이도 종가, 카와고에 종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계, 이렇게 크게 보아 다섯 계열로 갈라져 있는 상황이다.
대동류합기유술 본부
- 소위 일명 진무관(신부칸;眞武館) 계열.
- 토키무네 생전 종가대리를 지낸 콘도오 카츠유키 (近藤勝之)가 현 총무장(전 본부장), 토키무네의 제자이자 콘도오 카츠유키의 동생인 콘도오 마사유키(近藤昌之)가 현 본부장으로 있는 조직.
- 원래 본부 역할을 하던 ‘진무관(眞武館)’은 현재 ‘카츠시카 지부(葛飾支部)’로서 운영중이며, 본부 조직은 료오고쿠(両国)로 이전하였으므로, 엄밀히 말해 ‘진무관 계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 콘도오 카츠유키는 1974년11월 교수대리를 받고, 토키무네 생전인 1988년 5월 15일 5단 및 면허개전을 받아 종가대리 직무를 수행, 같은해 9월 10일에 해외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호주 건국 200주년 기념 행사에 대동류 종가대리로 참가) 타케다 토키무네 이름으로 발급된 면허개전은 콘도오 카츠유키가 받은 것이 유일하다.
- 콘도오 카츠유키는 토키무네 사후 1년 뒤인 1994년 전국 지부장회의에서 본부장/총무장으로 추대되어, 1995년 일본 고무도협회/일본 고무도 진흥회에 대동류의 대표자로 인정-등록되게 되었다.
- 콘도오는 이후 2005년부터 만 11년간 일본 고무도협회 상임이사 (2000-2011)를 역임, 2024년 현재 일본 고무도진흥회의 상임이사이자 심사 담당으로 재임중이다.
- 콘도오는 지부장 회의 결과에 따라 본부장을 맡고 있을 뿐, 스스로가 ‘종가’를 자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못박고 있다.
- 콘도오의 말에 따르면, 과거 지속적으로 토키무네의 외손에게 대동류를 지도하여 종가를 이어가려 시도하였으나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아 결국 포기하였다고 한다.
- 콘도오 카츠유키 본부장은 2018년 말 타케다 토키무네의 제자인 콘도오 마사유키(近藤昌之) 8단, 하세가와 스미에(長谷川すみ枝) 7단에게 각각 면허개전을 수여하였고, 2020년 8월 콘도오 마사유키에게 본부장을 이임하며 일선에서 물러난다.
- 2020년 9월을 기점으로 콘도오 카츠유키 총무장은 비전목록 등 전승되는 목록의 발급만을 담당하며, 그밖에 승단 심사를 포함한 국내외의 모든 업무는 콘도오 마사유키 본부장이 총괄하고, 하세가와 스미에 본부장 보좌와 우스야마 히데토 부본부장이 보좌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 무술가이자 연구자였던 故 스탠리 프래닌(Stanley Pranin)과 아이키 뉴스 – 아이키도 저널 측은 콘도오의 계열을 대동류의 적통으로 보고 있다.(formally passing on the Main Line Daito-ryu tradition).
-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카이(合気会)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매년 해외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며,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인지도가 높다.
아이즈 종가 계열 (会津武田家系)
- 소오카쿠의 장남 무네키요(宗清:소오카쿠의 망처 소생. 토키무네와는 배다른 형제) 의 증손(曾孫)인 타케다 무네미츠 (武田宗光) 계열.
- 무네미츠는 토키무네 문하생으로서 소오카쿠의 고향 후쿠시마에 지부를 열었으나, 토키무네 사후 독립, 종가(宗家)를 자칭하고 있다.
- 후쿠시마 NHK 문화센터에서 지도하며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활동하였으나, 근년들어 조금씩 홍보하고 있다. 여덟개 지부가 있다고 주장하나, 실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홋카이도 종가 계열(北海道宗家系)
- 소오카쿠의 사남 무네미츠(宗光: 토키무네의 친동생으로, 상술한 아이즈 종가 무네미츠와는 다른 인물) 계열.
- 이 무네미츠 역시 형인 토키무네에게 대동류를 배웠다.
- 토키무네는 생전에 타케다가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부도장을 허가하였는데, 전술한 아이즈 종가와는 달리 무네미츠는 토키무네 생전인 1991년 4월에 독립을 선언, 종가를 자칭하였고, 이에 토키무네는 곧바로 1991년 5월 무네미츠에게 파문장을 전하였다. 무네미츠는 이를 콘도오 측의 모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무네미츠는 후술할 오오시마 마사노부(大島正修)와도 대립하였다.
- 무네미츠가 1999년에 사망함에 따라, 현재는 둘째아들인 히토시(等)가 홋카이도 키타미시(北見市)의 루베시베(留辺蘂)에 본부를 두고 조직을 이끌며 활동하고 있다.
- 조직 산하 도장으로, 소오카쿠의 사위인 모노후미 아카시(物史証) 가 대표로 있는 ‘제2 대동관’이 있다. 현재 제2 대동관은 모노후미 아카시의 아들 타가이(物史互)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전합기호신무도 야마토카이(実戦合気護身武道 ヤマト会)- 타케다 히토시의 문하생 오오노 히로미치(大野裕迪) 3단이 만든 단체.
- 미에현을 중심으로 코베 등지에서 활동.
츠루기 호신술(剣護身術)-
- 타케다 히토시의 문하생 쿠로키 히로후미(黒木博文)가 만든 호신술 단체.
- 대동류를 베이스로 단전호흡 등을 믹스했다고 한다.
MAYA 호신술(MAYA護身術)- 타케다 히토시의 문하생이자 츠루기 호신술 인스트럭터 출신의 미우라 유우스케(三浦 裕介)가 츠루기 호신술에서 독립하여 만든 호신술 단체.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활동.
-
카와고에 종가 계열(川越武田家系) / 대동류합기무도 춘풍회 (大東流合気武道 春風会 : 구 성심회 계열 旧誠心会系)
- 토키무네의 큰딸 쿄오코(大島 京子)의 남편 타케다 마사노부(武田 正修) 계열. 본명은 오오시마 마사노부(大島 正修).
- 토키무네 와병중 후견인 역할은 차기 종가로 내정되어 있던 차녀 노부코 (横山信子)가 수행하였으나, 토키무네 사후 제자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자 학을 뗀 노부코는 대동류 문제에서 일체 손을 뗄 것을 선언하였고, 토키무네의 큰 사위인 오오시마가 토키무네 사후 1년 뒤인 1994년 7월부터 종가를 자칭, 이후 자신의 성을 처가의 성인 ‘타케다’로 바꾸었다.
- 오오시마는 이전까지 대동류를 수련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성심회를 포함한 대다수의 대동관 계열 수련생이 반발하였는데, 1991년 대동관 탈퇴 사건 당시 대동관을 탈퇴하여 성심회에 합류했던 이시바시 요시히사(石橋 義久)는, 오오시마가 종가를 선언하자 곧바로 성심회를 탈퇴, 가장 먼저 카와고에 종가에 합류하였다.
- 이시바시가 합류함에 따라, 실제로는 대동류에 문외한이었던 오오시마를 대신해서 실질적인 종가 역할은 이시바시 요시히사가 종가대리로서 수행하게 되었고, 이후 이시바시는 오오시마의 사망 이전까지 카와고에 종가의 종가대리/본부장 대행이 되었다.
- 이시바시의 합류 이후, 후술할 대동관 탈퇴사건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사노 마츠오를 비롯한 성심회 일부가 카와고에 종가에 합류하게 된다.
- 2016 년 7월 2일 오오시마(타케다) 마사노부가 사망하게 되자, 이시바시는 유족과 협의하여, 2016년 9월 30일 총본부도장을 폐관하게 된다.
- 총본부도장 폐관 이후 이시바시는 치바현 나가레야마시(流山市) 춘풍회 도장의 본부장으로서만 활동, 산하 조직으로 같은 치바현의 이스미시(いすみ市) 지부 한 곳 만을 두었다.
- 이시바시는 오오시마 생전인 2016년 1월, 비전목록 118개조상의 모든 기술을 공개한 서적을 출간하였다.
- 이시바시는 2023년 5월 13일, 간질성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 오오시마에 대해, 소오카쿠의 형인 惣勝의 자손이란 이야기도 있으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
대동류합기무도 후쿠오카 지부(福岡支部)
- 이시바시 요시히사(石橋義久)의 제자 야마다 토시미츠(上田利光)가 운영하는 도장.
- 이시바시는 2017년 3월부로 후쿠오카지부의 폐쇄 및 야마다와의 절연을 선언하였으나, 야마다는 이후에도 계속 지부를 자처하고 있다.
- 이시바시에 따르면 야마다에게는 초전(비전목록) 4개조, 5개조 및 합기지술은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한다.
기타 대동관계 – 구 성심회 계열(旧誠心会系)
- 1991년12월 토키무네 입원중 승단 체계에 반발, 대동관 탈퇴를 주도하여 독립한 성심회 계열.
- 토키무내 생존 당시 대동관은 실질적으로 5단이 최고단이었으며, 6단을 받은 인물은 고(故) 스즈키 신파치(鈴木新八)와 콘도오 두 사람 뿐이었다고 한다. (7단 이상은 없음)
- 스즈키와 콘도오는 1974년 11월에 함께 교수대리를 인가받았다.
- 토키무네 와병 당시 대동관 탈퇴를 주도했던 것은 카토오 시게미츠(加藤茂光)、아리사와 카오루 (有沢薫)、사노 마츠오 (佐野松雄) 등이며, 이들은 대동류 성심회의 이름으로 DVD를 출시, 그때까지 감춰져 있던 비전목록 118개조상의 모든 기술을 일찍부터 공개하여 주목받았다.
- 성심회는 2001년 경 내부 문제 (특정 인물의 조직 사유화에 대한 반발)로 해산, 일부는 후술할 카와고에 종가 계열에 합류하였다.
- 본래 카와고에 종가를 인정하지 않던 성심회의 구성원들이 카와고에 종가의 산하로 합류한 것은, 대동류 관련 상표권을 취득한 콘도오에 대항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견해도 있다.
- 반면 콘도오는 대동류와 관계없는 타인이 상표권을 취득하여 상표권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방어적인 목적으로 상표권을 취득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
- 실제로 콘도오가 상표권을 행사하여 누군가가 대동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막은 사례는 아직 없다.
대동류합기무도 대동회 (다이토오류아이키부도오 다이토오카이;大東流合気武道大東会)- 토키무네의 제자인 키무라 요시노부(木村芳信)가 1979년 설립.
- 토키무네 사후 오오시마의 산하에 합류하였으나 이시바시와는 별도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대동류합기무도 총본부(니혼다이토오류아이키부도오소오혼부;日本大東流合気武道総本部)- 대동관 탈퇴를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인 카토오 시게미츠(加藤茂光)가 설립한 조직.
- 성심회 해산 이후 독립하여 ‘일본대동류합기무도 총본부’의 종사를 자칭하였다.
- 카토오는 성심회 당시 118개조 DVD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대동류합기무도 지성관 (大東流合気武道 至誠館)- 대표는 대동관 탈퇴를 주도하였던 인물 중 하나인 사노 마츠오 (佐野松雄, 2014년 사망)가 설립한 도장.
- 사노는 성심회 해산 이후 지성관 본부를 설립하였고, 상술한 카와고에 종가 계열에 잠시 합류하기도 했다.
- 사노의 사후 현재는 사사키 마사미(佐々木雅美)가 지성관 관장으로서 도장을 이끌고 있다.
합기무도 기도회 (아이키부도오 기도오카이;合気武道 技道会)- 대표 하가 히데오(芳賀秀夫).
- 하가는 대동관 탈퇴사건 당시 함께 탈퇴하여 이후 성심회와 우호관계를 지속하였다.
- 기도회의 기법체계는 토키무네 계열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거쳐, 현재는 1개조부터 4개조까지 각 40개 기술을 기본으로, 1장(章)부터 10장까지의 148개 기술형과 응용기법, 합기장(合気杖) 등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변화되어 있다.
큐슈 대동관 (큐우슈우 다이토오칸;九州大東館)- 서향파 소속이던 니시 류우이치로오(西龍一郎)가 전향해서 설립한 도장.
-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가 ‘대동류’의 이름을 사칭하는 서향파(西郷派)측에 항의 방문하자, 서향파 대표(종가) 소가와 카즈오키(曽川和翁)는 토키무네에게 사죄하며 토키무네의 문하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고, 본인의 문하에서 서향파 지부장으로 활동하던 니시 류우이치로오(西龍一郎)를 토키무네 문하에 입문시키게 된다.
- 대동관 입문 이후, 니시오는 서향파를 그만 두고 대동관에만 적을 남겨두게 되고, 토키무네 사후에도 한동안 콘도오 카츠유키의 문하에서 지부장으로 활동하였으나 이후에 독립, 큐슈 대동관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 오사카 요오이치로오(尾坂洋一郎) 개인 도장
- 약 8년 가량을 주기적으로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를 찾아가, 비밀리에 개인적인 가르침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오사카 요오이치로오(尾坂洋一郎)의 도장.
- 스스로 단위(段位)나 증서에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토키무네로에게서는 그 어떤 단위(段位)나 증서를 받지 않았지만, 그 대신 토키무네로부터 ‘마사무네(正宗)’라는 무명(武名)을 받았다고 한다.
- 타케다 소오카쿠를 직접 인터뷰했던 토쿄 아사히 신문사의 오자카 요오이치(尾坂與市)와는 성은 같지만 전혀 무관한 사이라고.
- 오사카의 주장은 기존 대통류 계통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나, 객관적인 근거는 보여주고 있지 않아 사실 확인이 어렵다.
-
-
칸사이 아이키도 클럽(関西合気道クラブ) 계열
-
- 타케다 소오카쿠에게 면허개전(免許皆伝)을 인가 받은 히사 타쿠마(久琢磨:1895-1980)가 설립한 조직이다.
- ‘칸사이’라는 이름처럼, 주로 히사가 거주하고 수련했던 칸사이(関西)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된 편이며, 대동류 전체 계파중에 가장 수련인구가 많은 계열로 알려져 있다.
- 타케다 소오카쿠 이름으로 면허개전을 받은 인물은 칸사이 아이키도 클럽의 히사 타쿠마와, 히사의 직장 동료이자 대동류 사형제인 토네다치 마사오(刀祢館正雄) 단 두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당시 히사와 토네다치가 서명한 타케다 소오카쿠의 영명록에는 ‘히사와 토네다치 두 사람’이 ‘타케다 소오카쿠, 타케다 토키무네 두 사람’으로부터 면허개전의 기법을 가르침 받았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토키무네는 23세)
- 이후 히사가 토키무네의 권유로 대동관(大東館) 본부장을 맡게 됨에 따라 토키무네의 대동관은 타쿠마카이를 비롯한 히사의 문인들을 흡수하게 되었으며, 이때문에 히사의 문인들은 토키무네의 대동관과 118개조의 기술체계와 명칭을 공유하게 되었다.
- 토키무네와의 교류는, 처음에는 히사의 문인이었던 코바야시 키요히로(小林清泰)로 부터 시작되었는데, 코바야시가 히사의 초청장을 들고 홋카이도에 있는 타케다 토키무네를 찾아가 수련하고 오게 되었고, 스승과 사형제에게 토키무네에게서 배운 것들을 공유하게 되면서, 히사의 문인들에게도 토키무네가 정리한 체계가 ‘외우기 쉬운’ 정리된 체계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 코바야시 방문 이후, 히사와 나카츠의 문인이 있는 칸사이(関西)와 시코쿠(四国) 지역을 토키무네와 토키무네의 제자로서 교수대리를 인가받은 ‘스즈키 신파치(鈴木新八)’가 번갈아 가며 방문, 대동관의 기술을 지도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후 토키무네가 정리한 기술 및 체계는 대동류 ‘종가’의 기술이라는 권위에 힘입어 ‘진짜 대동류’로서 칸사이 지역에에 점차로 퍼져나갔다.
- 타쿠마카이 전체에 토키무네 체계가 어느 정도 보급이 이루어지게 되자, 타쿠마카이의 간사장으로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던 코바야시가 승단 심사에 토키무네의 118개조를 추가하기로 결단을 내리게 되고, 이때의 결정 이후 현재까지 토키무네의 체계는 타쿠마카이의 핵심적인 기술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 1993년 12월 2일 향년 73세로 토키무네가 사망한 이후 구심점을 잃은 히사의 문인들은 타쿠마카이를 다시 독립시키게 되었으나, 타쿠마카이에 자리잡게 된 118개조의 기술체계와 명칭은 현재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 이 시기의 영향으로 히사의 문인 가운데는 히사의 명에 따라 토키무네에게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 많다.
- 토키무네/히사/나카츠 계열에서 공유하는 118개조(토키무네가 제정한 118개의 기술) 외에, 히사가 소오카쿠에게 지도를 받은 당일 곧바로 복습한 내용을 당시의 최신 카메라에 담은 총전 11권(総伝11巻:大東流合気武道伝書全十一巻)의 방대한 사진자료를 자랑한다. 당시 수련이 끝나면 히사가 소오카쿠를 목욕탕으로 데려가 등을 밀어주는 사이에, 나카츠와 다른 제자들이 서둘러 그 날 연습한 기술을 재현, 사진 기록을 남겼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 대동관과의 교류 이전 초기에 독립한 일부 인물들은 대동관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총전을 비롯한 히사의 가르침만을 유지하게 된다.
타쿠마카이(탁마회;琢磨会)
-
- 히사의 토쿄 상경에 따라 칸사이 아이키 클럽이 해산(1968년)하게 되자, 히사의 문인 코바야시 키요히로(小林清泰:1970년 교수대리, 1973년 8단)가 모리 하카루(森恕:1965년 교수대리, 1973년 8단)를 설득하여 관서지역의 문인들(히사 타쿠마 및 나카츠 헤이자부로의 제자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고, 1975년 8월 24일 합동훈련을 계기로 단체를 설립하게 된다.
- 설립 당시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모아 교섭을 진행했던 코바야시 키요히로가 간사장(幹事長)을 맡았고, 대표로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을 세우고자 하여 변호사였던 모리 하카루를 총무장(総務長)으로 추대하게 된다. 이 조직구성은 이후 타쿠마카이가 2017년 정식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 단체의 이름은 나카츠의 제자였던 치바 츠구타카(千葉紹隆)의 제안으로 ‘타쿠마카이(琢磨会)’로 정하게 된다.대동류 모든 계파중 단일조직으로서는 가장 큰 조직으로 꼽힌다.
- 타쿠마카이 자체는 비교적 느슨한 조직으로, 히사의 제자인 모리 하카루(森恕) 전 총무장의 제자들이 주도하는 계열과, 같은 히사의 제자인 코바야시 키요히로(小林清泰) 전 간사장이 이끄는 계열, 히사의 제자인 전 지도부장 카와베 타케시(川辺武史) 사범에게 배운 제자들이 이끄는 계열, 히사의 제자인 아마츠 유우(天津裕: 2013년 사망)의 문인들이 이끄는 계열, 시코쿠(四国) 토쿠시마(徳島)에서 활동하던 히사의 형제제자인 나카츠 헤이자부로(中津平三郎)의 제자들인 와키마치(脇町)의 치바 츠구타카(千葉紹隆: 2017/10/24 사망), 코마츠지마(小松島)의 마키타 칸이치(蒔田完一:1990/4/25 사망), 타카마츠(高松)의 이자와 마사미츠(井澤将光) 등이 이끄는 시코쿠 계열 등 내부적으로는 암묵적인 다수의 계열이 존재하며, 큰 틀에서의 전체 기법은 공유하고 있으나 각 계열별로 기술의 디테일이나 교습방법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 단증의 발급 역시 과거에는 일괄적으로 모리 하카루 총무장 이름으로 이루어 졌으나, 모리 총무장이 고령으로 집무를 수행할 여건이 되지 못하게 되자, 현재는 각 사범의 이름으로 단증을 발급하는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같은 타쿠마카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편이며, 계열간의 이동이나 문하생들간의 교류는 다른 대동류 계열이나 고류 무술에 비해서는 비교적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 고무술 관련 일본내 가장 권위있는 양대 조직인 ‘일본 고무도 협회(日本古武道協会)’와 ‘일본 고무도 진흥회(日本古武道振興会)’ 중 일본고무도협회 쪽에 ‘대동류합기유술 타쿠마카이(琢磨会)’의 이름으로 가맹되어 있다.
- 참고로, 일본고무도협회는 전승이 다를 경우 단일 유파의 복수가입을 허용하나, 현재 일본고무도협회에는 후술할 콘도오 카츠유키 본부장 계열(타케다 토키무네 계열)이 ‘대동류합기유술’로, 타쿠마카이가 ‘대동류합기유술 타쿠마카이’로서 가입되어 있을 뿐, 그 밖의 다른 계열은 가입되어 있지 않다.
-
타쿠마카이 소속이었으나 현재 탈퇴한 도장들.
-
- 다이부칸(大武館)
- 히사의 제자로 1971년 교수대리, 1976년 8단을 인가받은 오오가미 켄키치(大神謙吉)가 히사의 인가를 얻어 1968년에 설립한 도장.
- 히사의 제자로 도장을 연 것은 오오가미가 처음이었다.
- 오오가미는 타쿠마카이의 설립 멤버중 한 사람이었으나, 히사의 사망(1980) 이후 타쿠마카이를 탈퇴하였다.
- 오오가미에 따르면, 히사로부터 면허개전을 제안받았으나 스스로 무술에 인생을 걸 입장이 되지 못하여 고사하였다고 하는데, 이 당시 히사와 주고 받은 서간(書簡)을 증거로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 토키무네가 제정한 118개조를 기본기술로 채택한 타쿠마카이(琢磨会)와는 달리, 토키무네 계열의 기술을 배제하고 히사에게 배운 내용을 유지하고 있다.
- 좌기(座技) 일곱가지(正面打ち一ケ条、二ケ条、三ケ条、外四ケ条、内四ケ条、小手返し、四方投げ), 입기(立技) 일곱가지(正面打ち一ケ条、二ケ条、三ケ条、外四ケ条、内四ケ条、小手返し、四方投げ)의 기본 기법을 바탕으로 기본기술에서부터 상술한 총전 11권의 기술로 이어지는 변화 기술을 수련하는 방식으로 지도하고 있다.
- 초단 과정이 좌기 70개 기술, 입기 70개 기술로 이루어져 있으며, 2단 과정은 초단 과정에 좌기 70개, 입기 70개가 추가된다.
- 대무관에도 합기에 대한 개념과 수련 방법은 존재하나, 전체적인 수련과정은 보다 유술적인 요소에 비중을 두고 있으하며, 오오가미 본인이 쇼린류(小林流) 등의 카라테를 함께 지도하고 있는 관계로, 카라테의 기법이나 무기에 대한 대응을 상정한 수련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고 있다.
코오부칸(講武館)
-
- 히사의 제자로 1978년 교수대리 및 5단을 인가받은 카와베 타케시(川辺武史)의 개인 조직.
- 카와베는 코바야시 키요히로의 대학 후배로, 코바야시의 소개로 히사에게 입문하게 되었다.
- 카와베는 타케다 토키무네에게 2단을, 히사에게는 5단을 인가 받았고, 타쿠마카이의 총무장 모리 하카루에게 8단을 인가받았다.
- 타쿠마카이의 지도부장(指導部長)으로서, 타쿠마카이가 사단법인화 되기 직전까지 수십년간 타쿠마카이 내에서 기술 지도를 담당하였고, 연무대회 등 대외활동에 있어서도 사실상 타쿠마카이의 얼굴로서 활동하였다.
- 임의단체였던 타쿠마카이가 사단법인화한 이후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타쿠마카이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2019년 10월 제명당하게 되었다.
- 이후 코오부칸이란 이름으로 관서지역의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화회(야마토카이;大和会)- 본래 타쿠마카이 소속이던 야마모토 아츠시(山本 敦史) 가 2018년 6단 인가를 받은 후 타쿠마카이를 탈퇴하여 만든 단체. 야마모토는 히사의 제자이자 타쿠마카이의 지도부장인 카와베 타케시(川辺 武史) 사범의 제자로, 한국에는 이 도장의 토쿄 수련회(東京稽古会)-후일 독립-의 블로그와 유튜브 동영상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후소오카이(扶桑会)
- 상술한 야마토카이의 야마모토 아츠시에게 2단(2018년 특별승단)을 인가 받은 후, 독립한 이시즈카 요시미(石塚嘉)가 운영하는 수련회.
- 2014년부터 꽤 오랜 기간 토쿄 수련회(東京稽古会)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2023년 1월부로 부상회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 ‘신도부상교(神道扶桑教;신토후소오쿄오)’라는 신흥종교단체의 일부로서 활동하고 있다.
- 참고로 ‘부상(扶桑)’은 일본의 옛 이름.
- 스승인 야마모토가 타쿠마카이를 탈퇴한 이후, 스승의 조직인 야마토카이의 지부로서 활동하다가 야마모토와 이시즈카간의 불화로 야마토카이를 탈퇴하였는데, 이후 잠시 타쿠마카이의 지부로서 활동하다가, 타쿠마카이 전 간사장인 코바야시 키요히로에게 4단을 인가받은 후 다시 독립하였다.
- 운영자인 이시즈카의 본업은 시대극(時代劇, 한국으로 치면 사극史劇)을 전문으로 하는 NHK 디렉터로, 그 덕분에 토쿄 수련회의 수련 영상은 NHK 의 방송장비를 이용하여 촬영하고 있기 때문에, 실력과는 별개로 영상과 편집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
세이노사토(清之郷)
- 히사의 제자로 1973년 교수대리를 인가받은 우사미 키요미치(宇佐見 清道) 가 설립한 도장.
- 우사미는 하치만 궁(八幡宮)의 신관(宮司; 해당 신사의 장으로, 주지스님 격) 출신이며, 늦은 나이에 검도에 입문하여 일흔의 나이에 전검련 검도 3단, 거합도 초단을 취득하였다.
- 마츠다 류우치의 ‘비전 일본유술’의 대동류에 관한 서술에 오류가 많다는 점을 들어 해당 서적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봉류합기무도(하쿠호오류아이키부도오;白鳳流合気武道)
- 타쿠마카이 소속이었던 고(故) 오카바야시 료오이치 (岡林良一 ; 무호는 쇼오겐 将玄. 2018년 1월 사망)가 타쿠마카이를 탈퇴하고 독립하여 만든 유파.
- 오카바야시는 본래 상술한 대무관(大武館)의 오오가미 켄키치(大神謙吉)의 제자로, 오오가미에게 대무관 사범으로서 도장 관리를 위임받았으나 관리 소홀로 인해 불화가 발생, 오오가미와 결별하였다.
- 이후 타쿠마카이(琢磨会)의 간사장을 맡고 있던 코바야시 키요히로(小林清泰) 문하에서 활동하다가, 홋카이도에 1년간 체류하며 타케다 토키무네에게 사사한 이후 ‘종가에게 배운 기법’을 내세우며 타쿠마카이 부지도부장(副指導部長)으로서 활동, 타쿠마카이 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지도부장이었던 카와베 타케시와 더불어 타쿠마카이의 쌍두마차로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 상술한 대무관의 오오가미와의 악연 탓에, 오오가미가 타쿠마카이를 탈퇴할 당시 오카바야시는 그를 맹렬하게 비난한 바 있는데, 결국 본인 역시 1995년 12월 타쿠마카이를 탈퇴하였다.
- 탈퇴 직후에는 ‘대동류합기유술 백봉회(大東流合気柔術 白鳳会)’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2002년 8월 7일 대동류의 이름을 버리고 백봉류로 이름을 바꾸었다.
- 기술을 거는 중간에 타격을 넣는 것은 흐름상 합기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백봉류를 만들면서 모든 기술에서 타격기를 없앴다.
- 백봉류 쪽에서는 검술도 수련하고 있는데, ‘오노하잇토류(小野派一刀流) 소오카쿠덴(惣角伝)’을 자칭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오카바야시가 배웠던 사사모리 쥰조(笹森順造) 계열의 츠가루덴(津軽伝) 오노하잇토류이다.
소요관(쇼오요오칸;逍遥館)
- 히사와 야마모토에게 교수대리 인가를 받은 오오츠카 토라노스케(大塚寅之助)의 제자 오제키 시게요시(小関茂義) 가 설립한 도장.
- 오제키는 본래 오카바야시 료이치의 제자로 오랜 기간 수련하였다.
- 역사의 흐름에 따라 소속이 대동관(토키무네-히사의 단체 통합에 따라)에서 타쿠마카이로 한 번 바뀌었고, 이후 다시 타쿠마카이에서 오카바야시 쇼겐의 백봉회로 이적, 그 후 다시 독립하였다.
-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이천일류(니텐이치류;二天一流 山東派)를 함께 지도하고 있다.
쇼오시카이 ・ 유메쥬쿠(天津伝大東流合気柔術 尚志会・夢塾)
- 타쿠마카이의 사범인 고(故) 아마츠 유우(天津裕; 2013년 사망)의 지도를 받은 쿠보타 도장(クボタ道場)-현 타쿠마카이 총전 토요 클럽-의 문하생 중 일부가 1997년 독립하여 만든 도장.
- 아마츠는 아사히 신문의 기자이면서 히사의 제자였고,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유를 근거로 들어 아마츠 계열의 수련생들은 ‘아마츠만이 유일하게 타케다류(武田流)의 대동류합기유술을 지도받았음’을 주장하고 있다.
- 여기서 말하는 타케다류란, 히사의 다른 제자들이 배운 것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가르침이며, 우에시바에게 배운 것과는 구분되는 타케다 소오카쿠 고유의 가르침을 이은 것은 아마츠가 유일하다는 뜻으로 붙인 내부적인 이름이며, 타케다류 합기지술과는 무관하다.
- 타쿠마카이 쿠보타 도장(총전 토요 클럽)과 자신들 두 곳 만이 타케다류를 수련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자신들만이 아마츠 생전의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상당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 히사 계통만이 갖고 있는 특장점으로서의 ‘총전’을 강조하고 있다.
- 다이부칸(大武館)
-
시코쿠(四国) – 나카츠 헤이자부로 계열
- 시코쿠(四国) 토쿠시마(徳島)에서 활동하던, 히사의 형제제자인 나카츠 헤이자부로(中津平三郎) 계열.
시코쿠 본부(四国本部)- 나카츠 헤이자부로(中津平三郎)의 제자 치바 츠구타카(千葉紹隆)의 뒤를 이은 조직.
- 현재는 치바의 제자인 사토오 히데아키(佐藤英明)가 시코쿠 본부장을 칭하고 있다.
- 치바는 텐진신요오류우(天神真楊流) 유술의 달인이기도 하였는데, 그 영향인지 텐진신요오류우의 방향성과 같은 정교한 유술적 기법을 추구한다.
- 치바 계통의 기법은 ‘와시즈카미(鷲掴み)’라 부르는 잡음손-보통 대동류에서는 ‘타카노츠메(鷹の爪)’라 부르는 기법-이 강조되는 것과 빈틈없이 물려들어가는 기술 전개에 이은 굳히기가 특징적이다.
- 참고로 와시[鷲:독수리 취]와 타카[鷹:매 응]는 둘 모두 수리과의 맹금을 뜻하며,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 기법상의 차이는 없다.
센켄카이(千顯会)
- 타쿠마카이 타카라즈카(宝塚) 지부를 담당하던 아라키 마스노리(顕木培功)가 독립하여 만든 조직.
- 아라키는 백봉류를 만든 고(故) 오카바야시 료오이치(岡林良一)의 제자로, 오카바야시가 백봉류(당시 백봉회)를 만들어 독립할 당시 타쿠마카이에 남아, 히사의 형제제자인 나카츠 헤이자부로(中津平三郎)의 제자 이자와 마사미츠(井澤将光)의 문하에서 한동한 수련한 이후, 같은 나카츠의 제자인 치바 츠구타카(千葉紹隆)의 문하로 옮겨 2017년까지 타쿠마카이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 치바의 지시에 따라 치바(千葉)의 앞글자[千]와 아라키(顕木)의 앞글자[顕]를딴 센겐카이를 2017년 7월 1일부로 설립하여 독립, 2017년 10월 24일 치바가 사망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독립 이후에도 타쿠마카이와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 아라키는 치바의 임종 직전까지 치바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아라키 본인의 기술은 유술적인 요소를 강조한 치바의 기술 보다는 달리, 아이키도를 수련했던 이자와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코마츠지마 지부(小松島支部)- 나카츠의 제자였던 마키타 칸이치(蒔田完一)의 뒤를 잇는 계열.
- 마키타는 스미토모 분시로(住友文四郎)의 소개로 나카츠에게 먼저 입문하였으나, 이후 히사 타쿠마 및 타케다 토키무네에게도 사사하여 기술의 폭을 넓혔다. 만년에는 토키무네 문하의 콘도오 카츠유키와도 교류하였다.
산토쿠카이(三徳会)- 나카츠 헤이자부로(中津平三郎)의 제자 이자와 마사미츠(井澤将光)가 이끄는 조직.
- 이자와는 같은 나카츠의 제자인 치바 츠구타카(千葉紹隆)와 함께 시코쿠(四国) 토쿠시마(徳島)에서 활동하였으나(치바: 시코쿠 본부장. 와키마치에서 활동, 이자와: 시코쿠 부본부장. 타카마츠에서 활동), 치바 사후 산토쿠카이를 조직,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자와의 기술은 아이키도를 수련했던 영향이 남아 있다는 세평.
타카마츠 지부(高松支部)
- 나카츠의 제자인 이자와 마사미츠(井澤将光)의 뒤를 잇는 계열로 토쿠쿠시마의 타카마츠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와슈우카이(和鷲会)- 토쿠시마의 키타지마(北島)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일본전합기유술 계열(니혼덴아이키쥬우쥬츠;日本伝合気柔術系)
- 아이키도(合気道)와 타케다류합기지술(武田流合気之術)을 배운 츠루야마 코오즈이(鶴山晃瑞)가,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 히사 타쿠마(久琢磨), 호리카와 코오도오(堀川幸道), 야마모토 카쿠요시(山本角義) 등을 찾아가 대동류를 배웠고, 히사 타쿠마로부터 면허개전(免許皆伝)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개창한 유파.
- 츠루야마는 ‘대동류(大東流)’가 아닌 ‘일본전(日本伝)’ 합기유술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그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나, 츠루야마 사후 일부 제자들은 스승의 의지에 반하여 ‘대동류’ 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 츠루야마는 대동류에는 유술, 합기유술, 합기지술의 세 갈래의 가르침이 있으며, 소오카쿠의 각 제자들은 한 가지씩만을 이어받았으며, 츠루야마 본인만이 유일하게 모든 계통을 취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 실제로는 토키무네는 츠루야마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토키무네의 발언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 또한 히사 계열을 대표하는 타쿠마카이측에서는 ‘츠루야마는 히사에게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츠루야마의 주장처럼 면허개전을 받지도 못했음을 증명하는 내용’을 기록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하여, 때문에 일본 내에서 이 일본전 합기유술 계통의 평가는 ‘사이비’에 준하여 상당히 낮은 편이다.
- 일본전 합기유술 계통은 타케다 토키무네가 정리한 기술체계와 동일한 명칭의 ‘118개조’라는 기술을 수련하고 있으나, 지도 초기의 실제 기술 내용은 토키무네 계열과는 전혀 달랐으며, 이후 토키무네 계열에서 차츰 기술 자료를 공개하자 거기에 맞추어 기술을 변형한 역사가 있다.
- 츠루야마가 마땅히 후계를 정하지 못한 채로 요절한 이후 분열, 주로 카나가와(神奈川)를 중심으로한 관동지역에 도장이 몰려있다.
- 왠일인지 이 인물이 저술한 ‘도해 코치 아이키도(図解コーチ合気道)’에 기술된 타케다류 측의 역사기술이 한국 합기도계에 인용되는 일이 잦다.
코오겐카이 (恒元会)- 스가사와 코오겐(菅沢恒元) – 본명 스가사와 시게루(菅沢茂)-이 이끄는 단체.
- 일본전 합기유술 관련 서적과 DVD를 출간하여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 토쿄 및 사이타마 등지의 시설을 빌려 지도중이다.
서봉관 (즈이호오칸 瑞峰館)- 관장은 츠루야마에게 면허를 받았다고 하는 미노와 유타카(箕輪 豊).
- 사이타마현 카스미시 소재.
현수회 (겐슈카이玄修會)- 영술가(霊術師; 영능력자) 오오미야 시로(大宮司朗)가 이끄는 모임.
- 일본 고신도(古神道)의 종교적 이론에 따라 합기를 해석하여 수련하는 것이 특징으로, ‘일본전’이 아닌, ‘대동류’의 이름으로 지도하고 있다.
- 오오미야는 후술할 히라가미 노부유키(平上信行)와 더불어 월간 비전(月刊秘伝)의 창간 당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 대동류 비전목록 118개조 두루마리상에 기재된 기술을 복원한 고전 대동류 천명(古傳大東流闡明 )이나, 진전 합기구결오비(真伝合気口訣奥秘) 같은 대동류 관련 서적 이외에도, 영능력에 관한 영술입문(霊術入門) 이라는 책과 DVD 를 출간한바 있다.
- 오오미야는 한때 ‘서향파’와 교류, 서향파 소속으로 활동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대동류와는 일체 관계가 없는 서향파의 기술에 니혼덴 계열 기술이 상당수 추가되어 현재에 이른다. 오오미야 합류 이전의 서향파측 기술이 영상과 서적으로 남아 있어서, 오오미야 합류 이후 기술 변화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현재 츠키시마(月島)를 중심으로 토오쿄오토(東京都) 내 각지의 시설을 빌려 활동중.
엄무관 (겐부칸 厳武館)- 관장은 오하라 켄(小原 健).
- 야규 신카게류(柳生新陰流) 검술과 신토무소류 장술(神道夢想流杖術)을 함께 지도한다.
일본전합기유술 오리가사 카츠미(折笠勝美) : 대동류 삼대기법 카나자와핫케이학원 지부 : 金沢八景学院支部- 오카모토 마코토(岡本真)를 중심으로 유튜브와 각종 세미나 등을 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오카모토는 상술한 오하라와 더불어 대동류의 성립에 ‘에도 야규(江戸柳生)류 유술’이 크게 관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하지만 야규 가문에 유술 기법이 어느 정도 전해지고 있었는가는 차치하고, 소오카쿠가 활동할 즈음에는 이미 검술을 포함한 에도 야규 자체가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십전무술회- 츠루야마 코오즈이의 문인 요네야마 카츠히코(米山 勝彦)가 요코하마에서 운영하는 도장.
- 츠루야마가 남긴 자료를 주기적으로 본인 블로그에 게재하고 있다.
- 여느 츠루야마 계통과 마찬가지로, 츠루야마 면허개전설, 대동류 에도야규 유래설 등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현진회 玄眞会(신기관 神氣館)- 무술계의 아웃사이더 히라카미 노부유키(平上信行)가 이끄는 계열.
- 상술한 현수회의 오오야마 시로와는 교류가 있으나, 주류 해석과는 다른 본인만의 주장을 다수 펼쳐온 탓에, 다른 대동류 계열이나 고류 무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사가와 도장의 경험과과 니혼덴을 베이스로 독자적인 전서(伝書)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본전합기유술 흥무회 (코오부카이 興武会)- 츠루야마의 문하생이었던 콘도오 츠구오(近藤悦雄)가 주도하는 계열.
- 카나가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
구 송무관(쇼오부칸;旧松武館)계열
-
- 소오카쿠의 대리교수(代理教授) 마츠다 토시미(松田敏美,본명 豊作)가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旭川市)에 개설했던 ‘송무관(松武館) 도장’에서 갈라진 계열.
- 소오카쿠는 면허를 발급하면서 시기에 따라 대리교수(代理教授), 교수대리(教授代理) 양쪽 명칭을 모두 사용하였는데, 일반적으로는 ‘교수대리’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마츠다 발급한 면장은 비교적 초기의 것으로 ‘대리교수’라 표기되어 있다.
- 마츠다 역시 제자에게 ‘교수대리’ 대신 ‘대리교수’를 발급하였다.
- 한국의 장인목이 이쪽 계통에 속하는데, 장인목은 대동류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계인 ‘초전(初伝)’에 해당하는 118개조의 목록 만을 받았으며, 그외에 따로 교수대리(教授代理, 혹은 대리교수代理教授)나 면허개전(免許皆伝)을 인가받지는 않았다. (장인목에 따르면 비전목록을 포함, 각 인가를 받는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고 한다)
- 마츠다 계열은 속성지도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계파에 비해 팔광류(핫코오류;八光流)나 신류(臣流), 도가합기술(道家合気術), 타케다류 합기지술(武田流合気之術), 무겐류아이키도(無限流合気道), 원기도(元氣道:한국) 등 다른 계통에 비해 파생유파를 상당히 많이 배출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이로하훈(いろは訓) 이라는 구전(口伝)이 특징적이다.
- 모든 기술에 명확한 명칭(토키무네 계열과는 다른 기술 명칭)이 존재하며, 거의 모든 분파에서도 공통된 명칭을 사용하는 것 역시 마츠다 계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연심관(렌신칸;練心館)
- 오쿠야마 류호(奥山龍峰)와 함께 팔광류의 기본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알려진,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마에다 타케시(前田武 – 2000/12/24 사망) 계열.
- 마에다는 마츠다로부터 ‘대리교수(代理教授)’를 인가받았다.
- 유술 체계, 합기유술 체계 외에도, 팔광류가 성립될 당시의 초창기 기술을 포함하여 팔광류의 개전(皆伝)기술 및 3대기주(三大基柱) 등이 전수되고 있다.
- 유술과 합기유술을 구분하여 가르치는 독특한 체계와, 먼저 스스로 생각하게 해보고, 그 다음에 선대부터 축적된 노하우를 설명하여 비교하도록 하는 지도 방식, 그리고 막연한 비유가 아닌 ‘구체적인 언어’로 전하는 구전(口伝)이라는 세분화된 지도체계가 선대로 부터 확립되어 있어, 다른 계열에 비해 기술과 감각의 전수가 대단히 용이한 편.
- 현재는 마에다 타케시의 외조카 타카세 미치오(高瀬道雄)가 뒤를 잇고 있다.
隆道会- 마에다 타케시의 제자 센다 류우조오(千田隆三)가 독립하여 만든 도장.
- 센다는 16세 무렵 아이키도(아이키카이合気会의 전신인 코오부카이皇武会) 마에바시 지부(前橋支部)에 입문, 이후 1952년에 마에다에게 입문한다.
- 마에다로부터 합기를 전수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기술 대부분을 변경하여 마에다가 전수한 렌신칸의 카타(形)는 남아있지 않다.
松風館- 마에다 타케시의 제자 오오타 이쿠오(太田育男)가 독립하여 만든 도장.
- 오오타는 마에다에게 입문하였으나 실제로는 센다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마에다의 도장 수련에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기술 대부분을 변경하여 현재는 마에다가 전수한 렌신칸의 카타(形)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 일본내 활동은 미미하나, 오오타의 제자로 텍사스 오스틴에서 대동류를 보급중인 에릭 피어슨(Eric Pearson) 등은 상당히 적극적인 온/오프라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弘道館- 렌신칸 마에다의 제자 마에바라 코오지(前原康二)가 독립하여 만든 도장
- 토미키 아이키도의 중심 허물기 이론을 도입하여 기술 전체를 변경한 관계로, 현재는 렌신칸의 카타(形)는 남아있지 않다.
원신관(겐신칸;元信館)
- 마츠다 토시미에게 오의개전(奥義皆伝)을 인가받은 타카라다 모토노부(宝田元信)가 홋카이도 오비히로시(帯広市)에 설립한 도장.
- 2017년 현재 타카라다는 생존해 있으나 2009년에 도장을 폐관한 후 은퇴하였다.
동숙(히가시쥬쿠;東塾)- 타카라다 모토노부(宝田元信)의 제자로 8단을 받은 아즈마 카즈오(東一雄)가 홋카이도 카도오쿤(河東郡)에 설립한 도장.
-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 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다.
유신관(유우신칸;悠信館)- 타카라다 모토노부(宝田元信)의 제자로 8단을 받은 사이토 유우지(斉藤裕司)가 홋카이도 오비히로시(帯広市)에 설립한 도장.
-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다.
- 전해지는 전서는 두 권으로, 본래의 기술 숫자는 근 300에 달한다고 하며, 사이토가 개중 핵심을 추려 50개형(50本形)으로 정리하였다.
- 50개형 중 후반부 10가지는 대도(太刀), 소도(小太刀), 장(杖)을 상대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도가합기술(道家合気術)
- 마츠다 토시미로부터 대리교수(代理教授)를 인가받은 하야시마 마사오(早島正雄) 계열.
- 단, 하야시마와 동문수학한 문인이 확인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일각에서는 하야시마의 대리교수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 다만 마츠다의 인가증이 확인되고 있고, 교수체계가 타카라다 계열과 거의 차이가 없어 마츠다의 문인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 하야시마는 처음에는 카마쿠라(鎌倉) 지역에서 카마쿠라 쇼오부칸(鎌倉 松武館)을 열고 대동류합기술(大東流合気術)이란 이름으로 지도하였다.
- 그러나 ‘타케다 소오카쿠에게 직접 배운 마지막 제자’, ‘대동류로 질병을 치료한다’ 등의 무리한 내용으로 홍보하였던 탓에, 같은 마츠다 계열을 비롯, 대동관 계열에게까지 직접적인 방문 항의를 받게 되는, 속칭 ‘송무관 사건(松武館事件)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하야시마의 스승인 마츠다가 직접 나서서 불초 제자에 대해 사과하기에 이른다.
- 송무관 사건으로 인해 하야시마는 대동류의 이름을 쓰기 껄끄러워지게 되었으나, 타이완으로 건너가 도인술(導引術)을 배우면서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전진교 용문파 13대로 인정받게 된다.
- 도인술을 배운 하야시마는 도인술과 대동류 기법을 융합, 당초 본인이 원하던 ‘건강법’의 요소를 포함시켜 ‘도가합기술(혹은 도가동공술;道家動功術)’로서 창편하게 되고, 무술이자 기공술로서 완성하게 된다.
- 이후 후쿠시마(福島) 지역에 ‘일본 도관(日本道観)’을 설립, 도가합기술을 지도하게 되었는데, 일본도관은 하야시마 사후에도 현재까지 종교단체로서 존속하고 있으며, ‘도가기공술’은 도가동공술(道家動功術)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 도가동공술은 사실상 대동류 그 자체이나, 일본도관에서는 이를 무술이 아닌 건강체조(건강법;健康法)의 일종으로 전수하고 있다.
합기송무회(아이키쇼오부카이;合気松武會)- ‘사가와전(佐川伝)과 마츠다(松田伝)전의 융합’을 모토로 하는 시오사카 요오이치(塩坂洋一)가 이끄는 모임. 동명의 DVD를 출시하였다.
- 시오사카는 ‘마츠다전’만을 표방하며 사승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으나, 하야시마가 아니라, 하야시마의 제자인 후지타 키치지로오(藤田吉次郎)에게 교수대리를 인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 마츠다 토시미 계열을 바탕으로 사가와 도장의 기법을 통합. 다른 대동류 계열과도 폭넓게 교류하고 있다.
팔광류 유술(핫코오류쥬우쥬츠;八光流柔術)
-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오쿠야마 요시하루(奥山吉治 : 무호 류우호오龍峰)가 독립하여 세운 유파.
- ‘덤비지 않고, 거스르지 않으며, 상처입히지 않는다(挑まず、逆らわず、傷つけず)’ 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 초대 종가시절부터 ‘하루 2, 30분 수련이면 충분하다’, ‘일주일 정도 배우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단기습득을 강조해 왔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련체계로서 ‘심적작용(心的作用)’ 이라는 이미지를 동반한 독특한 수련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다.
- 단증 및 목록에 표기되는 정식 명칭은 일본무예사호신도황광류유술(日本武芸司護身道八光流柔術)이나, 내부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그냥 팔광류 유술로 부르고 있다.
- 일본의 고류무술 연구가이자, 다수 유파의 무술을 전승하고 있는 무술가 오사노 쥰(小佐野淳)에 따르면, 오쿠야마는 대동류 외에 나카자와류(中澤流神伝護身術)의 개조 나카자와 소하쿠(中澤蘇伯)로부터 나카자와류를 배웠다고 한다.
- 사이타마현 오오미야시(大宮市)에 있는 본부도장은 몇 년 전까지는 2대 종가 오쿠야마 토시오(奥山俊夫: 무호 류우호오龍峰를 습명)가 직접 관리하였으나, 본부도장장으로 3대째인 오쿠야마 타카시(奥山貴士)를 임명, 점차로 아들에게 물려주며 사무국장인 카미죠 나루야마(上條成山)가 보좌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 2대 종가는 초대와 동일한 무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일본 고무술계에는 이런식으로 대를 이어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습명襲名)가 간혹 있다. 가령 ‘최고(最古)의 유술 유파’로 유명한 타케노우치류(竹内流捕手腰廻小具足) 역시 종가 및 상전가(기술을 이어받은 담당자) 양쪽 모두 대대로 같은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 팔광류의 기술체계는 초단기술/2단 기술/3단 기술/4단 기술/사범 기술/개전(皆伝)기술/3대기주(三大基柱)로 나뉘며, 초단 기술부터 습득하여 순서대로 4단 기술까지 수련하고, 다시 처음의 초단 기술로 돌아가서 반복하는 방식으로 수련한다.
- 팔광류에서는 개전(皆伝)의 다음 단계인 삼대기주(三大基柱)라는 단계가 있어서 팔광류의 최고비전으로 삼고 있는데, 「노견선렬(路肩鮮烈)」, 「험애견진(験崖見真)」, 「신기약여(神肌躍如)」 의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 대동류 모든 계열에서 4개조로 분류하는 ‘경락법(経絡法)’(아이키도 4교에서 통점을 자극하는 기술)을 팔광류에서는 ‘가쿤(ガクン;雅勲)’이라 부른다.
- 한국 합기도에서 이 가쿤을 한자 그대로 들여와 ‘아훈(雅勲)’ 넣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아훈이란 한자는 일본 내에서도 단순한 음차(音借)로 사용되며, 뜻은 물건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거나, 흔들리거나, 빠지거나, 떨어지거나 할때 쓰는 표현이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상황에 따라 덜컥, 확, 휙, 콱, 뚝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부사(副詞)’이며, 한자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 경락의 수련은 일반적인 바깥 경락(소장, 삼초, 대장. 마츠다덴을 제외한 대동류에서는 일반적으로 ‘바깥 맥外脈’ 이라 부른다)과 안쪽 경락(폐, 심포, 심장. 마츠다덴을 제외한 대동류에서는 일반적으로 ‘안쪽 맥内脈’이라 부른다) 외에도 몸통쪽의 경락(방광, 담. 대동류에서도 마무리 기법으로 이 부위를 제압하는 기법이 다수 존재하나, 따로 경락으로 분류하지 않는다)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이런 기법들을 유파를 대표하는 기법으로 삼고 있다.
- 팔광류에서 이야기하는 경락은, 한의학의 경락과는 다르다.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Cus D’Amato) 가 신체 부위에 번호를 붙이는 넘버 시스템(number system)을 고안하여 타이슨에게 컴비네이션을 연습하도록 지도했던 것처럼, 경락의 이름은 팔광류에서 신체 부위를 보다 세분화 하여 지칭하기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 팔광류 유술과 황법지압(皇法指圧)은 표리일체임을 주장하는데, 실제로는 양쪽 모두를 익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본부에서는 양쪽 모두를 배울 것을 권장하고 있다)
- 황법지압은 단순한 마사지가 아니라, 초대 오쿠야마가 개발한 일종의 대체의학이며, 그 이론적 배경을 히라타 쿠라키치(平田 内蔵吉)가 개발한 황방의학(皇方医学), 혹은 황법의학(皇法医学)에 두고 있으나, 히라타는 정규 의학 교육을 수료하지 못한 인물로, 황방의학 역시 명백히 대체의학 (유사의학)에 속한다.
- 팔광류에서는 ‘합기(合気)’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합기 대신 초대 종가 시절에는 금강력(金剛力)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잘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중심력(中心力)과 같은 보다 직관적인 용어로 대체되는 추세에 있다.
- 전술한 바와 같이 팔광류에서는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팔광류에 뿌리를 두고 분파한 무술들은 한결같이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 팔광류 개전사범(皆伝師範) 출신으로는 팔극권을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한 무술연구가 마츠다 마사시(松田鉦. 승려로서의 법명은 류우치隆智), 무술사(武術史) 연구가로 유명한 사가와 도장의 타카하시 마사루(高橋賢) 등이 있다.
타케다류 합기지술 (타케다류우아이키노쥬츠;武田流合気之術)
- 오오바 잇센(大庭一翁; 혹은 오오바 이치오오, 오오바 카츠오키)가 창시한, 팔광류에서 분파한 무술.
- 타케다류 측에서는 대동류와 마찬가지로 ‘타케다신겐(武田信玄)’에서부터 전해져온 무술이며, 소오카쿠와는 다른 루트로 전승되어온 무술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초대 오오바 잇센(大庭一翁)이 초대 오쿠야마 류호에게 팔광류를 배운 뒤 창시한 유파이다.
- 일본의 고류무술 연구가이자, 다수 유파의 무술을 전승하고 있는 무술가 오사노 쥰(小佐野淳)에 따르면,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 열었던 타케다류 초창기의 도장에서 오오바가 가르치던 기술은 팔광류 그 자체였다고 한다.
- 계통을 막론하고 본래 대동류에는 장술(杖術)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데(츠루야마 코오즈이의 ‘일본전 합기유술’ 제외), 오오바는 ‘쿠키신류(九鬼神流)’의 봉술(棒術)을 도입하여 타케다류의 장술(杖術)로 삼았다.
- 오오바의 외아들인 츠요시(剛之)도 타케다류를 수련하였으나, 1959년 오오바가 후사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탓에, 오오바 사후 약 10년 가까이 후계에 관한 혼란이 있었다. 결국 오오바의 외아들도, 오오바 생전에 사범대(師範代)로 본부 도장에서 오오바를 대리하여 지도를 담당했던 모리모토 카즈오(森本一雄)도 오오바의 뒤를 이어 타케다류의 대표가 되지는 못하였고, 현재 고무도 협회에 종가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이케다 카즈아키(池田一晶) 계통이다.
타케다류 나카무라파 아이키도(타케다류우 나카무라하 아이키도오;武田流中村派合気道)
- →타케다류에서 나카무라 히사시(中村久:2018/7/5 사망)가 독립하여 만든 유파.
- 나카무라가 초대 종가로, 타케다류에서 독립하며 많은 기술변형이 이루어졌다. ‘시합하는 합기도’를 표방하며 수도 공격을 위한 독특한 글러브를 착용하고 대련한다. 나카무라는 DVD를 출시하여 이름을 알린 바 있다.
무한류 아이키도(무겐류 아이키도오;無限流合気道)
- 타케다류와 키라쿠류 유술(気楽流柔術)을 바탕으로 오가와 카즈마사(小川和真正)가 창시한 무술.
- 아이키도(合気道) 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와는 관계가 없다.
- 합기무술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호쾌한 블럭 격파 시범이 유명하며, 자체적인 시합을 개최하기도 하고, 외부 시합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서향파대동류합기무술(西郷派大東流合気武術)- 서향파의 기원은 불분명하나, 타케다류 유래설이 대두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으므로, 일단 해당 분류로 추가해 놓는다.
- 아직은 가설, 혹은 추측 단계로,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다.
합기유술역수도(아이키쥬우쥬츠 갸쿠테도오;合気柔術逆手道)
- 팔광류를 배운 타나카 타다시가 아사야마이치덴류(浅山一伝流) 등을 결합하여 만든 유파.
- 2대 종가인 쿠라베 마코토(倉部誠)가 해외에 거주하며 지도하였고, 해외 활동 당시 3대 종가를 네덜란드인 스티브 반 니원하우젠(Steve van Nieuwenhuizen) 에게 물려주어, 현재 본부는 네덜란드에 있다.
- 2대 종가였던 쿠라베는 이후 일본으로 귀국, 네덜란드의 3대 종가와는 별도로 일본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중에 있다.
황광도 유술(코오코오도오 쥬우쥬츠;皇光道柔術)
- 팔광류 본부사범 이리에 야스히로(入江 安博)와 미국 지부장 마이클 라모니카(Michael J. LaMonica)가 독립하여 만든 유파.
- 같은 무술을 일본 국내에는 이리에 야스히로를 종가로 하고, 해외에는 팔광전심류(핫코오덴신류;八光伝心流)라는 이름으로 마이클 라모니카를 종가로 하여 전하고 있다.
- 참고로 팔광류가 자랑하는 ‘FBI 체포술에 팔광류 기술이 채용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마이클 라모니카가 FBI 아카데미의 교관(인스트럭터)으로 채용되었던(1979년) 것을 말한다.
- 일본 국내 활동은 극히 미미하며, 팔광류와의 트러블 때문에 황광도가 일본 무술계 주류 미디어에 소개되는 일은 전혀 없다.
기신숙(키신쥬쿠;氣慎塾)
- 황광도 유술 개전사범 코지마 마코토(小嶋 誠)가 독립하여 2012년에 창시한 신흥 유파.
- 실전 합기유술을 표방한다.
- 참고로 키신쥬쿠를 이끄는 코지마 마코토사범은 혐한 단체 재특회를 공개적으로 응원하는 혐한(嫌韓)인사.
- 2024년, 코지마가 급환으로 사망한 이후, 단체는 수제자 야마자키(山崎)와 관서지부장이었던 카세타니 마사히로(綛谷 昌大)의 2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 온/오프라인 국내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신류유술(신류쥬우쥬츠;臣流柔術)
- 팔광류 사범이었던 벨기에인 루크 어워터스(Luc Awouters)가 1994년에 독립하여 만든 유파.
- 팔광류의 ‘가쿤(ガクン;雅勲)’에 뿌리를 둔, 상대에게 격통을 일으키는 급소부위를 공격하는 기법을 장기로 한다.
- 쇼오린지켄포오(少林寺拳法)의 라칸앗포오(羅漢圧法)에 포함된 급소술(急所術)이 이와 유사하다.
- 현재 활동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팔광전통류(핫코오덴토오류우;八光伝統流)
- 팔광류 사범이었던 오카이 요시시게와 오카이 류우타로오 부자가 2015년에 독립하여 만든 유파.
-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유술기법 이외에, 팔광류의 ‘황법지압(皇法指圧)’에서 파생된 ‘전통지압의학요법’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잔류 유술(泰山流柔術)- 팔광류 초대 종가의 문하생으로 팔광류 최고 단계인 삼대기주(三大基柱) 사범으로서 팔광류 미주 – 유럽 지역 대표를 역임한, 캐나다 출신 조셉 밀러(Joseph Miller)가 창시한 유파.
- 조셉 밀러는 약 20년간 미 공군에 복무하였는데, 기간 중 18년간을 일본에서 복무하였다.
- 밀러는 본인의 군 복무 경력을 바탕으로 체포술을 개발, 2011년에 타이잔류 체포술로서 영어 서적을 발표하였다.
- 이후 팔광류 3대째이자 본부도장장인 오쿠야마 타카시(奥山貴士)와 팔광류 체포술을 공동 개발, 2019년에 BAB 재팬에서 발매한 팔광류 체포술 DVD를 공동제작하였다.
- 그러나 DVD 발표 이듬해인 2020년경 ‘상표 무단 사용’ 등을 이유로 팔광류 측에서 파문을 통보하였고, 이후 현재는 타이잔류의 이름으로 하치오오지시(八王子市)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쿠야마와 함께 체포술 DVD를 제작했던 조셉 밀러가 파문된 관계로, 해당 DVD에 대한 저작권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결국 팔광류 체포술 DVD는 추가 판매 없이 절판이 결정되었다.
텐요오류 유술(天庸流柔術)- 오오사카 지역에서 팔광류 목계숙(木鶏塾)을 운영하던 카키모토 마사시(垣本雅史)가 2021년 4월 독립하여 만든 유파.
- 2021년 2월 카키모토는 팔광류 본부에 팔광류를 탈퇴[退会]할 의사를 밝히는 편지를 보냈는데, 본부측과 입장차가 있어 몇차례 논쟁이 오갔으나, 팔광류 본부 측에서는 결국 카키모토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하를 떠나는 이문(離門)이 아닌, 파문(破門)을 결정하였고, 카키모토는 이를 수용하였다.
- 목계숙의 목계(木鶏)는 장자(莊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그 목계가 맞다.
- 유파명인 천용(天庸)의 용(庸)은 중용에서 따왔다고 한다.
류우토쿠몬(隆篤門)- 팔광류의 초대 종가 오쿠야마 류우호오(奥山龍峰)와 마츠나가 타케시(松永猛)에게 팔광류를 배운 토리이 류우토쿠(鳥居隆篤)가 만든 문파.
- 토리이는 먼저
- 1994년 유법철화권(柔法徹化拳)을 창시하고, 이후 문파명을 2015년 ‘류우토쿠몬(隆篤門)으로 정리하였다.
겐지코오류우(源氏皇流)- 미나모토노 코오류우(源煌龍)=히로 와타나베(ヒロ渡邉)가 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무술.
- 와타나베는 댄 이노산토(Daniel Inosanto), 테드 웡(Ted Wong) 등 이소룡의 제자들에게 직접 절권도를 배웠다고 하며, 일본에서 절권도를 보급하고 있다.
- 겐지코오류우를 보급할 때는 ‘미나모토노 코오류우(源煌龍)’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미나모토 가문 본가로부터 분가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농업의 신(神)인 아지츠키 타카히네코노 미코토(アヂスキタカヒコネノミコト=阿遅鉏高日子根神)를 류조(流祖)로 한다고 한다.
- 이 류조의 어머니는 타기리히메(タキリビメ=多紀理毘売命)라는 여신인데, 이 여신의 형제로는 ‘정승 오승 승속일(正勝吾勝勝速日)’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아메노오시호미미(アメノオシホミミ)가 있다.
- 와타나베의 주장은 스사노오가 이즈모(出雲)를 제압할때 쓰던 병법(兵法)이 수메르에서 왔다고 하며, 이 기법은 일본 국왕 가문의 기법으로 전해졌고, 해당 유파의 기법은 일본 국왕 가문의 기법이라고 한다. 또한,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초고대문명설에 등장하는 무(MU) 대륙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하며, 이를 상징하기 위해 도복 띠에 ‘우주 용신(宇宙龍神) 라무자법혼전(邏無字法魂伝)’ 이라는 자수를 새겨넣고 있다.
- 토리이 류우토쿠(鳥居隆篤)의 주장에 따르면, 와타나베는 토리이의 제자로 40년 이상 수련하였고, 겐지코오류우의 원형은 토리이의 무술이라고 한다.
- 와타나베 및 그의 제자 이시이 토오고(石井東吾)가 쿠로오비 월드 등 유명 유튜브 채널에 절권도 인스트럭터로 출연는 방법으로 먼저 이름을 알리고, 이후 조금씩 겐지코오류우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장인목 계열
- 마츠다 토시미에게 비전목록을 수여받은 한국인 장인목 계열.
- 국무관(國武館)
- 장인목은 대구에 국무관을 열고 제자들을 지도하였는데, 도장은 후일 장인목의 제자인 장목구가 잇게 되었으나 결국 폐관하였다.
원기도(元氣道)- 장인목의 제자인 이성창은 대동류 유술을 기본으로 종합건강무술 ‘원기도’를 창시하였다.
- 현재는 무술이 아닌 고 이성창이 개발한 기계를 사용한 운동법이자 건강법으로서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대구 지역에 도장이 있다.
- 국무관(國武館)
- 마츠다 토시미에게 비전목록을 수여받은 한국인 장인목 계열.
-
-
호리카와 코오도오(堀川幸道) 계열
-
-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로부터 교수대리(教授代理)를 인가받은 호리카와 코오도오(堀川幸道: 1894-1980) 계열.
- 호리카와는 문인 및 지인들로부터 ‘영세명인’으로 추대되었다.
- 일부 호리카와 계열에서는호리카와가 ‘대동류 면허개전’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해당 주장에 따르면 ‘소오카쿠 생전에 면허개전을 약속받아 목록을 미리 작성하였으나, 소오카쿠에게 날인(捺印) 받지 못한채 소오카쿠가 사망하였고, 이후 아들 토키무네에게 날인을 받았다’ 라고 하고 있으나, 소오카쿠와 토키무네 양쪽의 영명록에서 호리카와의 면허개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 토키무네는 ‘기술은 호리카와, 면장(면허)는 히사, 실력은 사가와’ 라는 평을 한 바 있다.
- 호리카와의 제자인 육방회(六方会) 오카모토 세이고오(岡本正剛)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밖에도 다수의 문인을 배출하였다.
- 호리카와 계열은 접촉한 것으로 상대를 날려버리는 ‘접촉 합기(触れ合気)’를 특기로 하며, 유술 기법의 비중이 미미한 편이다.
- 히사 타쿠마의 소개를 받아 호리카와를 찾아갔던 타쿠마카이(琢磨会)의 전 간사장 코바야시키요히로(小林清泰)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리카와는 봉술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호리카와에게 꼭 배우고 싶었으나, 짧은 수련 일정 때문에 배울 수 없었다며 아쉬웠던 기억을 회고하였다.
- 사가와 유키요시에 따르면 호리카와는 소오카쿠 사후 사가와 유키요시의 강습회에도 참가한 바 있는데, 호리카와 측 문인들에 따르면 상호 참가였다고 한다. (사가와도 호리카와의 강습회에 참가하였으나 영명록에 서명을 거부하였다고 함)
- 특기할만한 점으로 유튜브 스타 ‘야나기 류켄(柳龍拳)’ 역시 호리카와 도장 출신이라는 증언이 있다. 다만 야나기 본인은 ‘코바야시 다이류우(小林大竜)에게 대동류를 배웠다고 하여 다른 계보를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야나기의 스승 코바야시 다이류우는 타케다 류우코(武田龍虎)로부터 타케다류 합기술(武田流合気術)과 대동류 합기술(大東流合気術)을 배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타케다가의 가신이었던 오오히가시 큐우노스케(大東久之助)로부터 이어지는 무술로, 타케다 소오카쿠의 대동류합기유술이나, 오오바 잇센(大庭一翁)과는 무관한 계통임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무술계에서는 우선 오오히가시 큐우노스케(大東久之助)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인물인지부터 의심하는 분위기이며, 오오히가시를 언급하는 유파가 있다면 우선 팔광류에서 파생된 오오바 잇센 계통이 아닌가 의심하고 보는 실정이다.
- 호리카와 계통은 극소수의 기법 외에는 대부분의 기술에 이름이 정해져있지 않다.
코오도오카이 (행도회;幸道会)
- 호리카와 코오도오가 직접 설립한 단체.
- ‘합기이도류(合気二刀流)’가 일부 전수되고 있다고 하며, 고단자에게는 타케다 소오카쿠가 발급했던 것과 동일한 비전목록 118개조, 비전오의 36개조의 목록, 비전오의지사(秘伝奥義之事)의 대면장(大免状)을 발급하고 있다.
- 호리카와 본인이 생전에 설립한 단체이므로, 호리카와 계통의 모든 단체는 코오도오카이에서 분파해 나간 단체에 해당한다.
- 1980년 10월 29일 호리카와가 사망하자, 호리카와의 유언에 따 이노우에 유우스케(井上祐助)가 뒤를 이었으며, 2023년 2월 24일 이노우에가 사망이후 타카하시 토오루(高橋 透)가 총본부장으로 뒤를 이었다.
- 이노우에는 타케다 소오카쿠의 제자였던 아버지 유우지(祐治)에게 유년기부터 대동류를 배우다가, 서른 한 살이던 1963년에 호리카와에게 입문, 이후 1976년에 7단과 함께 ‘비전오의’의 대면장을 받고, 1977년에 호리카와에게 사범위를 인가받았다고 한다.
-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사실상 후계단체라 할 수 있으나, 이노우에 생전에도 형제자인 오카모토 세이고의 인지도 때문에 본가에 해당하는 코오도오카이의 조직 규모는 쇠퇴일로에 있었는데, 이노우에 사후 조직은 더욱 줄어들어, 2024년 현재 일본 국내 기준 지부의 숫자는 다섯 까지 줄어들었다. (본부 포함)
록뽀오카이 (육방회;六方会)
- 고(故) 오카모토 세이고오(岡本正剛)가 설립한 단체.
- ‘육방(六方)’은 ‘전후좌우(前後左右)’의 사방(四方)에 ‘상하(上下)’를 더하여, 어느 방향으로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 오카모토와 육방회는 ‘아이키(AIKI)’ 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단체와 인물들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 오카모토는 1963년에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입문하였으나 선배와 동료들이 하나 둘씩 대동류를 그만둘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련을 계속하여, 1974년에 7단을 취득, 1978년에 호리카와에게 사범을 인가 받았다.
- 1980년 호리카와가 사망하자 코오도오카이의 토오쿄오(東京) 지역 각 지부 들을 이끌고 독립하여 육방회를 설립하였다.
- 육방회와 오카모토는 모든 대동류 계열중 가장 먼저 대동류 기법에 대해 영상 및 서적을 공개, 그때까지 베일에 쌓여있던 대동류를 세간에 알려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편이나, 대동류 내부에서도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호리카와 계열 특유의 퍼포먼스를 세간에 알린 탓에, 대동류에 대한 많은 오해를 낳기도 했다.
- 오카모토는 합기의 원리 규명에도 적극적이었는데, 가령 스스로 몸에 전극을 붙이고 근전도(筋伝導) 검사를 하면서 합기를 시연, 이후 기록된 그래프를 분석하기도 하는 등, 근육의 상태 변화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는 결과를 떠나서 매우 선구적이면서 또한 적극적이라 할 수 있다.
- 오카모토는 최종적으로 스스로가 터득한 합기에 대해 ‘원운동(円運動)’, 생리적 반사(生理的反射), 호흡(呼吸)이라는 세가지 요소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한 것으로 정리하였다.
- 오카모토 생전에는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국내외에 많은 지부를 갖고 있었으나, 오카모토 사후에는 일본 국내 기준 본부 + 6개 지부로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2015년 1월 16일, 오카모토가 향년 89세로 사망하자 7월 1일부터 하야시 마사하키(林正明)가 회장으로 취임, 오카모토의 뒤를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이몬카이(正門会;정문회)
- 오카모토의 제자로서 26년간 지도를 받았으며, 토키기현 아시카가 지부장을 지낸 카나야 테츠야(金谷哲也)가 오카모토 사후에 독립하여 세운 단체.
- 오카모토 사후 육방회를 원만탈퇴하였고, 육방회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스스로 ‘방계’임을 자인하고 있다.
- 호리카와 계통 중에서는 드물게 대중적으로 납득이 가는 합리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기슈우카이 (기수회;大東流合気柔術 技修会)- 오카모토 세이고오의 제자로 27년간 지도를 받은 오오쿠보 쿠니아키(大久保 邦昭)가, 오카모토 사후 독립하여 세운 단체.
이신칸(유심관;大東流合気柔術 維心館)- 오카모토 세이고 문하의 아마노 마사유키(天野 正之)가, 오카모토 사후 독립하여 세운 도장.
- 아마노는 원래 경찰관 출신으로, 재직중 요신칸(養神館)으로 파견되어 시오다 고오조오(塩田剛三)의 2년간 내제자로 아이키도를 수행, 당시 최단기간에 4단을 인가받았다고 하며, 이후 꾸준히 수련하여 경시청 아이키도 사범을 지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 아마노는 1994년 시오다 사후 1996년에 오카모토의 문하에 입문, 이후 오카모토가 사망하게 되는 2015년까지 약 20년간 육방회에서 대동류를 수련하였고, 오카모토가 사망한 이듬해인 2016년 9월에 별도의 도장을 만들어 육방회에서 독립하게 된다.
일본검무도(日本剣武道) 츄우도오류 부몬카이(中道流武門会)- 오카모토 세이고(岡本正剛)의 제자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 重信)가 창설한 유파.
- 당초 일본검무도(日本剱武道) 츄오도오류(中道流) 부몬카이(武門会)로 활동하다가, 오카모토에게 사사하면서 대동류합기유술 육방회(六方会)의 후쿠오카 지부로서 활동하였다.
- 오오쿠마는 오카모토에게 2010년에 5단을 인가받고, 이듬해인 2011년, 대동류합기유술 부몬카이(大東流合気柔術武門会)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이후 츄오도오류와 대동류합기유술을 통합, 부몬카이로서 활동하였으나, 2023년 급환으로 사망하였다. - 오오쿠마의 검술은 코오도오켄류(皇刀軒流) 카지하라 마사미(梶原政美)에게 사사한 것으로, 검술과의 통합 이외에도 고서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의 일본의 고대 역사에 대한 언급, 일본 종교의 신도(神道)를 언급하는 등, 본인 무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위해 국수적이고 종교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메이신류 합기유술(明真流合気柔術) 텐쇼오카이(天照会)- 오카모토 세이고오의 문하에서 2008년 부터 2011년 까지 약 3년간 대동류를 수련한 아사카 토시하루(安積俊治)가 만든 유파.
- 아사카는 오카모토 생전에 초단(初段)까지 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사카는 육방회 입문 이전에 스티븐 시걸 계통의 도장에서 수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시걸 스타일과 육방회의 스타일이 섞여있는 모습을 보인다.
- 오카모토 사후, 오카모토의 합기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99%의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합기’, ‘원숭이도 할 수 있는 합기’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려 이름을 얻었다.
- 메이신류(明真流)의 밝을 명(明)자는 ‘해’와 ‘달’을 의미하여, 각각 일본 신도(神道)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와 달의 신 츠쿠요미(月読命)를 상징하고, 참 진(真)자는 참된 일본인으로서의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 텐쇼오카이(天照会)의 천조(天照) 역시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의미한다고.
호신 메소드 (護身メソッド)- 오카모토 세이고오의 제자 키타무라 미치오(北村満千男)가 세운 도장이자 체계.
- 실랏 등 타 무술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호신체계로 정립하였다고 한다.
합기감각(合気感覚)- 오카모토 세이고오의 제자 우에노 나오(上野直)의 활동명.
- 합기에 대한 감각을 요가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케이부류 합기체술(影武流合氣体術)- 아메미야 히로키(雨宮宏樹)를 종가로 하는 신흥 무술.
- 1520년 부터 아메미야 가문에 일자상전(一子相伝)으로 전해 내려온 가전의 체술(体術)에, 아메미야 히로키 개인이 수련해왔던 여러 무술을 결합하여 2010년에 새롭게 창시하였다고 한다.
- 타격 부분은 시스테마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많으며, 아메미야 본인이 시스테마 세미나에 수 차례 참가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 ‘합기(合気)’에 대해서는, 원래 가전무술에 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무술에서 배운 것을 본인의 대(代)에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메미야 본인이 직접 시인하였다.
- 아메미야 가문에, 5백년간 전해내려온 가전 무술이 진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메미야 본인은 오카모토 세이고의 육방회에서 수련했다는 증언이 있으므로 육방회 계통으로 분류한다.
- ‘1520년부터 전해졌다’는 것이 무술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쉽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술’, ‘유술의 원류(柔術の源流)’라고 불리는 ‘타케노우치류(竹内流)’가 성립된 것이 1532년이다. 즉, 맨손무술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유파로 지금까지 알려진 타케노우치류 보다도 13년은 더 일찍 아메미야 가문의 맨손무술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 참고로 최초로 ‘유술(柔術)’이란 말을 사용하고, 낙법[請身. 후에 受身로 변화]을 개발한 유파는 세키구치 신신류(関口新心流)인데, 이 유파를 창시한 세키구치 우지무네(関口氏心)가 1598년생이다.
- 유튜브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일본 국내에서도 ‘일자상전 가전 무술’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오가와 도장 (오가와 도오죠오 小川道場)
-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인 오가와 타다오(小川忠男)가 코오도오카이에서 독립하여 세운 도장.
- 오가와는 본래 유도 2단으로 아이키도 요오신칸(養神館)에 입문, 시오다 고오조오의 내제자로 14년간을 수행하였으나, 회의를 느끼고 요오신칸을 퇴관하여 호리카와 코오도오에게 입문, 3년간 개인지도를 받은 후 토오쿄오(東京)로 돌아와 오가와 도장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 오가와는 2007/11/3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하였으나, 사망 하루 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도장에서 수련하였다고.
- 현재는 키요미야 카츠유키(清宮克明)를 비롯한 제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신합기유술 (신아이키쥬우쥬츠 新合気柔術)- 오가와 타다오(小川忠男)의 제자 스즈키 노부유키(鈴木 信幸)가 독립하여 사용하는 무술명.
- 스즈키 카이로프랙틱(鈴木カイロプラクティック)이라는 본인의 의료시설에서 개인지도를 위주로 지도하고 있다.
삼체합기학원 (산타이아이키가쿠인 三体合気学院)- 스즈키 노부유키(鈴木 信幸)의 제자 미야자와 노리요시(宮沢法義)가 독립하여 사용하는 이름.
- 90일에 합기를 완성하게 해준다고 하며, 고액 개인지도(1회 60만원 상당) 위주로 지도하고 있다.
야와라기도(やわらぎ道)- 스즈키의 제자 이시모리 요시오(石森義夫)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 기술 보다는 ‘합기’의 습득에 초점을 맞추어 지도하고 있다.
- 각종 콜라보를 포함, 유튜브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하고 있다.
키타미 합기무도회 (키타미 아이키부도오카이 北見合気武道会)
-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 이토오 젠키치(伊藤善吉)가 독립하여 세운 조직.
- 이토오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토오 젠키치가 사실상의 수제자였으나 파벌싸움에 밀려 코오도오카이를 탈퇴, 독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젠키치 사후 미나가와 시게루 (皆川茂)가 뒤를 이었으나 현재 사망.
- 지금은 이토오 젠키치의 아들인 이토오 류우도오(伊藤隆道右) 등이 조직을 이끌며 키타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키타미 공업대학 아이키도부 (키타미코오교오다이가쿠 아이키도오부 北見工業大学 合気道部)- 호리카와 코오도오 생전, 상기 키타미 아이키부도오카이의 사범을 파견하여 설립한 키타미 공업대학내 서클. 이곳을 졸업한 인원들이 삿포로, 아사히카와 등지에 지부를 개설하여 키타미 아이키부도오카이의 하부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동류합기유술 광도(히카리도오 光道)
-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무호:무코오無光)가 독립하여 세운 단체.
- 본래의 히카리도오는 2016년에 해산, 이후 니시키도의 제자들이 각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현재는 큐슈 지부장이었던 코오가 켄이치(古賀憲一; 무호는 부코오武光)가 히카리도오 본부장/총사범이란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대동류합기유술 일각관 (잇코쿠칸 一刻館)-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토쿄 지부를 담당하던 오오사키 카즈요시(大崎司善)가 개전사범(皆伝師範)을 인가받고 독립하여 세운 도장.
- 히카리도와의 교류는 지속하고 있다.
- 오오사키는 신카게류 역시 개전을 인가받고, 신도몽상류 장술 또한 수행하였다고 하며, 그에따라 일각관 도장에선 신카게류도 함께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대동류합기유술 일풍관 (잇푸우칸 壱風館)- 오오사키 카즈요시(大崎司善)의 제자로 입문한 마츠무라 히로미치(松村浩道)가 일각관에서 독립하여 세운 도장.
- 마츠무라는 오오사키의 소개로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에게 직접 지도를 받아 니시키도와 오오사키의 연명(連名)으로 면허개전(免許皆伝)을 인가받았다고 한다.
대동류합기유술 무한도장 (무겐도오죠오 無限道場)-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히카리도오 후쿠오카 지부를 담당하던 타케우치 켄지(竹内研二)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 타케우치는 니시키도에게 따로 사범 인가를 받은바 없기 때문에 계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합기유술 행우회 (코오유우카이 幸裕会)-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히카리도오 후쿠오카 지부를 담당하던 카이다 히로미츠(甲斐田 裕光)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
대동류합기유술 일공관 (잇쿠우칸 壱空館)-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히카리도오 쿄토 지부를 담당하던 토요다 코오지(豊田 浩司)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대동류합기유술 일본초당 (日本草堂)-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히카리도오 토쿄 지부를 담당하던 고토오 타케미즈(後藤武水)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대동류합기유술 텐잔도장 (天山道場)- 니시키도 타케오錦戸武夫의 제자로 추정되는 아마야마 카즈노리(天山一乗)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 호리카와 계통이라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사승을 밝히지 않고 있다.
- 미야자키현 사세보시 소재.
기타 중소 계열
- 강도회 (고오도오카이 剛道会)
- 호리카와 코오도오堀川幸道의 아들, 호리카와 고오도오堀川剛道가 설립한 단체.
- 호리카와 고오도오는 다섯명에게 면허개전(免許皆伝)을 인가하였다고 한다.
- 고오도오의 사후에는, 고오도오에게 1992년 면허개전을 인가받은 스가노 토시아키(菅野利明)가 본부장을 이어받아 운영중이다.
- 호리카와 고오도오 생전에는 무로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사후 스가노가 있는 노보리베츠(登別) 지역으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목양관 (보쿠요오칸 牧羊館)-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이자 코오도오카이 사범이었던 요네자와 카츠미米澤克己 가 독립해서 만든 도장.
- 홋카이도 무로란시 소재.
무전숙 (무덴쥬쿠 無傳塾)-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 이이다 히로오(飯田宏雄)가 독립하여 세운 도장.
가류우젠(臥龍禅) 도장- 이이다의 제자 中條真堂가 미야기현에서 운영하는 도장. 中條真堂는 사이코오지(済興寺) 라는 절의 주지스님으로, 대동류와 선(禅)을 결합하여 절과 도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거합심검류유술 심기청영관 (신기세이에이칸 居合心剣流柔術・心技清榮館)-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로 코오도오카이의 사범을 지낸 마키타 슈우다이(蒔田修大)가 독립하여 세운 유파.
- 마키타는 호리카와 사후 코오도오카이를 이끈 이노우에 유우스케(井上祐助)에게 지도를 받았아 코오도오카이 토오쿄오 본부장을 지냈으나 이후 ‘거합심검류유술’을 만들어 독립하였다.
연찬숙 (켄산쥬쿠 研鑽塾)- 이와모토 마사키(岩本正樹)가 코오도오카이에서 독립하여 세운 도장.
- 오오사카 소재.
도덕회 (도오코쿠카이 道徳会)-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 니시카와 도오토쿠(西川道徳)가 독립하여 만든 단체.
키야마카이(木山会)- 키야마 하야오(木山駿)의 제자 로이 골드버그(Roy Goldberg)가 독립하여 만든 단체.
- 키야마는 호리카와 코오도오의 제자로 코도도오카이의 생전에 북미 지부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다니엘 키야마가 뒤를 이어 지부장을 있다.
- 로이 골드버그는 코오도오카이 2대 회장 이노우에 유우스케에게 대동류합기유술 7단과 비오의(秘奧義)목록을 받았다고 한다.
- 키야마카이는 미국 코네티컷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근년에 일본으로역수입되었다.
- 강도회 (고오도오카이 剛道会)
-
-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 계열. 佐川伝大東流合気武術系
-
-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에게 대리교수(代理教授)를 인가 받은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1902-1998) 계열.
- 사가와는 소오카쿠 사후 대동류 36대를 자칭하였으나, 이후 토키무네에게 종가 자리를 넘겨주고 종가의 사범이라는 ‘종범’을 칭하였다.
- 토키무네가 대동류 통합을 위해 아버지의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할 당시 사가와에게 ‘총본부장’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사가와는 이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 사가와가 남긴 어록에 따르면 스스로 몇차례 ‘면허개전’임을 자칭한바 있으나, 소오카쿠의 영명록상에는 면허개전 전수가 확인되지 않으며, 오히려 사가와의 다른 시기 증언을 보면 사가와 스스로가 면허를 받지 않았던(못했던) 사정에 대해서 직접 변명한 것을 제자들이 기록한 내용이 남아 있어, 스스로 이에 관해 일관되지 못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동류합기무술 사가와 도장(大東流合気武術佐川道場 – 本部道場
- 사가와의 문인 모임인 사문회(佐門会)의 이사장이자 ‘투명한 힘’, ‘합기수득의 길’의 저자 키무라 타츠오(木村達雄)가 소속.
- 사가와 유키요시의 문하생 중, 사가와가 허락한 인물만이 들어갈 수 있는 ‘사문회(佐門会)’라는 모임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 사가와에게 직접 10원(十元:사가와 도장 교습체계의 최고 과정)을 배운 것은 우치노 타카시(内野孝治), 키무라 타츠오(木村達雄), 그리고 타카하시 마사루(高橋賢) 세 사람 뿐이었다고 한다.
- 엄밀히 말하면 10원 강습은 받았지만, 키무라와 타카하시가 인가 받은 단위는 오전 4단(奥伝四段)이었다고 한다.
- 그 밖에 대리교수(代理教授: 준 면허5단;準免許五段)를 인가받은 인물로 홋카이도의 이이다 에이키(飯田栄紀; 부자 2대가 배움)가 있고, 초기(1979년)에 사범대(師範代)를 인가받은 오전 4단(奥伝四段)의 오하라 요시오(小原良雄)가 있다.
- 사가와 도장의 단위-면허 체계는 도중 몇차례 바뀌었는데, 마지막으로 정리된 체계는 이론상으로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전계 단위(段位) 칭호 초전(初伝) 초단(初段) 목록(目録) 2단(二段) 중전(中伝) 3단(三段) 상전(上伝) 준4단(準四段) 조사(助士) 오전(奥伝) 4단(四段) 조교수(助教授) 준면허(準免許) 준5단(準五段) 대리교수(代理教授) 면허(免許) 5단(五段) 교수(教授) 오면허(奥免許) 6단(六段) 정교수(正教授) 개전(皆伝) 7단(七段) 교범(教範) 총전(総伝) 8단(八段) 정교범(正教範) 극전(極伝) 9단(九段) 사범(師範) 윤가(允可) 10단(十段) 정사범(正師範) - 장애가 있던 사가와의 아들 요시유키(敬行)가 2015년 사망하자 코다이라시(小平市)의 사가와 도장은 폐관하게 되었다.
대동류합기무술 사가미하라 지부 (大東流合気武術相模原支部 – 高橋賢師範)
- ’사가와전 대동류합기유술의 진실’의 저자 타카하시 마사루의 도장.
- 타카하시는 ‘아이키도의 과학(한국 출간명 : 합기도의 과학)’의 저자 요시마루 사다오(무호 : 케이세츠) 등과 파문(破門) 논쟁을 벌인바 있다.
- 타카하시 마사루는 팔광류 초대 종가에게 가르침을 받아 팔광류 개전사범을 거친 바 있다.
기타 독립계열
- 대동류합기무술연구소 종심관(宗心館)
- 사가와 유키요시에게 오전 4단(奥伝四段)으로 사범대(師範代)를 인가받은 오하라 요시오(小原良雄)가 2016년 개설한 도장.
- 동문인 시오사카 요오이치(塩坂洋一), 이이다 에이키(飯田栄紀) 및 사쿠마 멘지(佐久間綿二)의 권유로 개설하였다고 한다.
관광사류유술(冠光寺流柔術;칸코오지류우 쥬우쥬츠)- ’무도 vs 물리학’, ‘합기개안’ 등의 저자 야스에 쿠니오(保江邦夫)가 만든 유파.
- 사가와 도장에서는 4원(元)까지 수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야스에는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에 전해지는 유술기법 및 활인술(活人術)에, 사가와 도장에서 배운 대동류기법을 접목하여 관광사(冠光寺) 진법(眞法), 관광사(冠光寺)류 유술을 창시하였다고 한다.
- 관광사(冠光寺)의 ‘관광(冠光)’은 성인의 머리 부근에 비치는 후광 – 헤일로(Halo, Nimbus)를 의미하며, 이를 ‘유일무이한 성모마리아’의 상징으로 삼고, 사(寺)는 크리스트교 사원(寺院)을 의미하는 글자로 삼아 ‘성모마리아의 사원’이란 의미로 관광사(冠光寺)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 몬세라트 수도원에 전해진다는 기법은, 야스에 본인이 직접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에 가서 배운 것은 아니고, 일본의 히로시마현 미하라시 하구라에 있는 ‘몬세라트의 성모(モンセラートの聖母;Santa María de Montserrat) 시호오앙(四方庵)이라는 곳에 은거해 있던 스페인의 카탈루냐인 수도사 에스타니스라우 마리아 요파르트(Estanislau Maria Llopart;エスタニスラウ・マリア・ヨパルト, 2003년 3월 29일 사망)를 만나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 몬세라트 수도원에 전해진다는 해당 기법은, 성모마리아를 기리는 수도기사단원에게 비밀리에 전수되는 기법으로, 예수 그리스도 본인이 직접 사용했던 활인술(活人術)이라고 한다.
- 야스에는 이 활인술이 관광사진법(冠光寺眞法 – コミュニタ、 Comunitat)이라고 설명하는데, Comunitat 는 스페인어(Spanish)/카탈란(Catalan) 어느 쪽이든 그냥 ‘커뮤니티’ 라는 뜻이다.
- 카탈루냐인 수도사 에스타니스라우 마리아 요파르트(Estanislau Maria Llopart)에 대해서는 카탈란 위키백과 등에 기록이 남아 있고, 1974년부터 2003년 임종 직전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던 것이 일본과 스페인 등의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무술적 소양이 있었는가, 혹은 실제로 관광사진법과 유사한 활인술을 지도하였는가 같은 부분 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 키쿠우쥬츠(氣空術)
- 카라테(空手) 출신의 하타무라 히로카즈(畑村洋数)가 야스에 쿠니오에게 관광사진법을 배운 후, 이를 카라테와 융합하여 만든 무술.
- 피부감각을 중시하는 방향의 수련에 비중을 두다.
- 카라테 출신 계통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 코오와류 카라테도 사쿠신칸(幸和流空手道 咲心館)
- 쇼오린지켄포(少林寺拳法), 풀컨택트 카라테(フルコンタクト空手) 출신의 히사스에 카즈히로(久末和弘)가, 야스에 쿠니오로 부터 관광사진법을 배우고, 하타무라 히로카즈에게서 기공술을 배운 후 소속 카라테 단체에서 독립하여 만든 단체.
- 야스에에게 관광사진법 오전 5단(奥伝五段)을 받았다고 한다.
- 카라테 출신 계통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 스스로의 체축(體軸), 정중선(正中線)에 대한 인지(認知), 심층근(深層筋)과 표층근(表層筋)의 의식적인 구분 사용과 그 각각에 한 이완 등, 고유수용성 감각의 향상에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수련하고 있으며, 해당 감각을 체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이한치(ナイハンチ)라는 카타(形)를 중시하여,종종 ‘나이한치도(道)’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 키쿠우쥬츠(氣空術)
합기송무회(아이키쇼오부카이;合気松武會)- ‘사가와전(佐川伝)과 마츠다(松田伝)전의 융합’의 시오사카 요오이치(塩坂洋一)가 이끄는 모임.
-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가와 도장에서 8원(八元)까지 수련하였다고 한다.
- 시오사카는 ‘마츠다전’에 관해서는 사승관계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으나, 하야시마가 아니라, 하야시마의 제자인 후지타 키치지로오(藤田吉次郎)에게 교수대리를 인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세한 내용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합기연체회(아이키렌타이카이;合気錬体会)- ’아이키도의 과학’, ‘발경의 과학’의 고 요시마루 사다오(吉丸貞雄:무호는 ‘케이세츠慶雪’)가 설립한 단체.
- 요시마루는 1961년 입문해서 1976년까지 팔원(八元) – 오전 4단(奥伝四段)까지 수련하였으며, 1975년 7월 사가와에게 비전목록을 받았다고 한다.
- 1976년 사가와와의 불화로 인해 독립하였으나, 이후 사가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요시마루에게 총전 8단(総伝八段) 면장을 선물하였다고 한다.
- 사가와 도장의 기법을 바탕으로 사토오 킨베에(佐藤金兵衛)에게 배운 야마모토 카쿠요시 계열의 가르침을 통합하였다.
- 사토오 킨베에가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에게 배웠던 내용도 전수하고 있다고 한다.
- 2014년 요시마루가 사망한 이후, 제자인 아리미츠 쇼오지(有満庄司)가 이끌고 있다.
- 아리미츠 본인이 유튜브에서 밝힌 이야기에 따르면, 입문 2년차가 되던 해에,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 거동은 물론이고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황에 있던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던 중에, 문득 눈앞에 사조인 사가와 유키요시의 환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가와 유키요시의 환영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합기의 형태와 무한히 펼쳐지는 기술을 보고 아리미츠는 마침내 합기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 아리미츠가 보여주는 합기를 ‘사가와 유키요시의 합기’로서 인정할수 없다는 취지의 현피 신청이, 사가와 문하이자 사문회(佐門会) 출신인 와타나베 타케시(渡邉 剛)로부터 들어왔었고, 실제로 겨루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겨루었는가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박빙의 승부였고, 아리미츠가 승리하였다는 내용을, 두 사람이 함께 유튜브에 출연하여 밝힌 바 있다.
정중심도 무예숙(세이츄우신도오 부게에쥬쿠;正中心道 武芸塾)- 아리미츠 쇼오지에게 약 5년 가량을 사사한 미도리카와 유우이치(緑川 裕一)가 독립하여 만든 도장.
- 20세기 초 히다 하루미치(肥田春充)가 창시한 단련체계인 히다식 강건술(肥田式強健術)의 정중심 단련법을 대동류에 접목하였다고 한다.
- 히다식 강건술의 정식 명칭은 ‘성(聖)중심도 히다식 강건술(聖中心道肥田式強健術)’로, ‘정중심도’ 라는 명칭은 일본어에서 동일한 발음인 ‘성(聖)중심도’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 히다식 강건술은 히다가 20세기 초반, 당시로서는 최신 이론이었던 그 당시의 서구식 웨이트 트레이닝에 단전(丹田) 단련과 기합술(氣合術) 등의 동양적 요소를 접목하여 만든 단련법으로, 요즘으로 치면 코어 트레이닝이나 고유수용성감각 트레이닝에 해당하는 요소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
- 정중심도 무예숙 측의 커리큘럼을 해석해 보면, 해당 수련법의 핵심은 히다식 강건술을 베이스로 하여 스스로의 정중심을 인지하는 고유수용성감각을 증진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기유술 타케시 도장(아이키쥬우쥬츠 타케시 도오죠오;合気柔術 剛道場)- 사가와 도장 출신 와타나베 타케시(渡邉 剛)가 세운 도장.
- 사가와 도장에서는 약 8년간 5원(元)까지 수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가와 유키요시의 문하생 중, 사가와 선생이 직접 인정한 ‘사문회(佐門会)’에 들어간 마지막 제자라고 한다.
- 이후 대원화류(大円和流)를 창시, 2015년 간류지마(巌流島) 시합에 출전하였으나 스모 출신 나카지마 타이시(中島大志)에게 15초만에 KO패하였다.
- 현재는 ‘합기유술 타케시 도장’을 운영, 대원화류의 이름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 상술한 합기연체회의 아리미츠에게 현피를 신청하였고, 박빙의 승부에서 분패하였다고 한다.
- 아운카이(阿吽会)
- 아쿠자와 미노루(阿久澤稔)가 세운 신흥 무술 단체.
- 아쿠자와는 자위관 출신으로 젊어서 산타를 수련하였으며, 사가와 도장에서 단기간 수련 경험을 쌓은 후, 무명의 야규우신간류(柳生心眼流)의 스승을 만나 그 스승에게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체계를 정립, 30대 후반에 아운카이를 설립한다.
- ‘아운[阿吽]’은 한국어로는 ‘아훔’으로 발음하는데, 본래 불교용어지만 일본에서는 파트너와 호흡이 매우 잘 맞음을 가리키는 관용표현인 ‘아운의 호흡(阿吽の呼吸)’이란 표현으로 주로 쓰인다. 일본인들에게 아운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주로 금강역사상(=인왕상)의 벌리고 다문 입 모양을 들어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 일본 내의 인지도는 미미한 편이나 한국외에는 ‘구조’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강조하는 무술로 일찍부터 소개되었으며, 현재는 ‘내동무술(內動武術)’을 표방하고 있다.
- Zero to Hero IFIT
- 아쿠자와 미노루의 제자 로버트 존(Robert John, 통칭 ‘롭’)이 만든 단체.
- 롭은 20년 이상 아쿠자와의 밑에서 수행하면서 아운카이내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로 각종 해외 세미나 등을 담당하며 조직의 내실과 외연 확장양쪽 모두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아쿠자와와의 의견 불일치로 2024년 7월 27일자로 아운카이로부터 독립을 천명하였고, 이에 아쿠자와는 7월 28일자로 파문을 선언하였다.
- 각종 전통무술 및 복싱, BJJ 등 계열을 불문하고 타 무술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도심회체술(刀心會体術)- 아쿠자와 미노루의 수제자중 한 명인 미야카와 카즈히사(宮川和久)가 2023년 독립하여 세운 단체.
- 아쿠자와 미노루의 수제자중 한 명인 미야카와 카즈히사(宮川和久)가 2023년 독립하여 세운 단체.
- 대동류합기무술연구소 종심관(宗心館)
-
-
구 유진관(쥬우신칸;柔進館) 계열
-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에게 교수대리(教授代理)를 인가받은 야마모토 카쿠요시(山本角義:1914-1982)가 홋카이도 토마코마이시(苫小牧市)에 개설했던 ‘유진관 도장’에서 갈라진 계열.
- 야마모토의 본명은 토메키치(留吉)로, 소오카쿠가 사용하던 ‘타케다 소오카쿠 미나모토노 마사요시(武田惣角 源正義)라는 이름에서 각기 한 글자(角, 義) 씩을 따와 쿠요시라고 하였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이름자를 소오카쿠에게 허락받았다고 한다.
- 소오카쿠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소오카쿠와 헤어져 토오쿄오로 향하던 중, 연락을 받고 급히 아오모리로 찾아가, 방치되어 있던 소오카쿠의 시신을 수습하고, 아들인 토키무네에게 연락하였다고 한다.
- 스스로가 소오카쿠의 마지막 비전을 이어받고 ‘대동류합기유술 총주(総主)’란 직함을 사용할 것을 허락받았다고 주장하였으나, 문서 등의 근거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 후일 무한신도류 거합술(無限神刀流居合術)을 창시하고 이름을 ‘잇토오사이(一刀斎)’로 바꾸었다.
- 카쿠요시 계열은 대부분의 기술에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정해진 순서 없이 기술을 수련한다.
- 카쿠요시 계열은 대동류와 오노하잇토류(小野派一刀流) 라고 주장하는 검술, 무한신도류 거합술(無限神刀流居合術)을 함께 수련하지만, 각각에 대해 따로 면장(免状; 일종의 인증서)을 발급하고 있다.
- 검술과 거합술 양쪽 모두 교수대리(教授代理)를 인가 받은 사람에게는 ‘잇토오사이(一刀斎)’라는 무호를 허락하고 있다.
- 다른 계열에 비해 검술의 비중이 비교적 큰 편이나, 카쿠요시 계열에서 가르치는 일도류는, 현전하는 다른 일도류 계열과는 카타가 전혀 다르다.
- 소오카쿠가 검술 대련에서 누군가를 이겼다는 에피소드는 다수 전해지고 있는 반면, 소오카쿠가 따로 검술 카타를 수련하였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카쿠요시 계열에서 수련하는 검술은 소오카쿠에게 배운 검술을 카쿠요시가 카타로 만들었거나, 혹은 카쿠요시의 창작으로 추정된다.
- 구 유진관(旧柔進館)은 야마모토 카쿠요시 만년에 폐관하였으므로, 도장 자체를 물려받은 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선포회 유진관 (센푸카이 쥬우진칸 宣布会柔進館)
- 야마모토 카쿠요시의 문인 스도오 타케시(須藤丈)가 이끄는 도장.
- 스도는 본인이 야마모토 카쿠요시의 임종을 지키고 ‘총주’를 계승하였다고 한다.
- 형제제자인 스가사와 카츠히코(鵜沢勝彦)가 스도 측과 함께하고 있다.
- 스도오와 반목하는 나가오 젠유우(長尾全祐) 측에서는, 스도오가 야마모토 문하에 있을 때는 중학생이었고, 이후 긴 외국생활을 하였는데 언제 배울 시간이 있었냐며 스도오의 경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도유진회 (신토오쥬우진카이 神刀柔進会)
- 야마모토 카쿠요시의 문인 나가오 젠유우(長尾全祐)가 이끄는 도장.
- 나가오는 카쿠요시에게 오노하잇토류와 무한신도류, 대동류합기유술의 교수대리/면허개전을 받아 ‘총주’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 2024년 현재 나가오는 생존해 있으나 고령으로 은퇴하였다.
신도도진회 (신토오도오진카이 神刀道進会)
- 나가오 젠쇼에게 교수대리를 받은 요시다 토모히코(吉田智彦)의 도장.
- ’미카와전 야마모토파 대동류 합기유술(三河伝山本派大東流合気柔術)’을 표방하고 있다.
- 요시다는 그밖에 호리카와, 토키무네, 타카라다 등에게도 지도받은 바 있다고 하며, 사가와 도장 수련 경력도 있다고 한다.
- 요시다는 SNS에 주기적으로 한국을 비난/비하하는 글을 업데이트 하는 대표적인 혐한(嫌韓)인사.
현무관 세계인법무예연맹 (겐부칸 세카이닌포오부게에렌메에 玄武館世界忍法武芸連盟・国際柔術連盟総本部)
- 나가오 젠유우에게 교수대리를 인가받은 타네무라 츠네히사(種村恒久: 무명 쇼오토오匠刀)가 운영하는 도장.
- 하츠미 마사아키(初見良昭)에게 지도받은 닌쥬츠(忍術)를 가르치는 도장이지만 대동류도 지도하고 있다.
- 타네무라 측에 다따르면 2001/5/6일에 나가오를 처음 만나, 2년 뒤인 2003/11/27에 대동류 및 무한신도류거합의 교수대리 및 면허개전을 인가받았다고 한다.
- 타네무라는 카쿠요시의 제자인 사토 킨베에에게도 지도 받았다고 한다.
일본병법 대화도 본부 (니혼헤이호오 다이와도오 혼부 日本兵法大和道本部)
- ’대화도(다이와도오;大和道)’는 고류 무술 전반을 두루 경험한 사토오 킨베에(佐藤金兵衛)가 창시한 무술이다.
- 킨베에는 야마모토 카쿠요시에게 교수대리/면허개전을 받았으며, 오쿠야마 류호에게 팔광류를,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아이키도를 배웠고, 야규신간류를 포함하여 수련한 일본의 유술 유파만 십여개에 달하며, 그밖에 검술, 카라테 등 다종 다양한 무술을 경험하였다.
- 중국무술은 대만의 왕수금(王樹金) 노사를 통해 팔괘장, 태극권, 형의권을 배웠고, 왕수금에게 파문된 이후 이후 양파 팔괘장의 이자명 노사에게 배사하여 양파 팔괘장 4세 전인이 되었다.
- 킨베에는 본인이 섭렵한 각종 무술을 집대성하여 ‘일본병법 대화도’를 창시하였고, 킨베에 사후 딸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합기연체회(아이키렌타이카이;合気錬体会)
- ’아이키도의 과학’, ‘발경의 과학’의 고 요시마루 사다오(吉丸貞雄:무호는 ‘케이세츠慶雪’)가 설립한 단체.
- 사가와 도장의 기법을 바탕으로 사토오 킨베에(佐藤金兵衛)에게 배운 야마모토 카쿠요시 계열의 가르침을 통합하였다.
- 사토오 킨베에가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에게 배웠던 내용도 전수하고 있다고 한다.
- 2014년 요시마루가 사망한 이후, 제자인 아리미츠 쇼오지(有満庄司)가 이끌고 있다.
-
대동류 유사(類似) 단체 일람
- ‘합기(合気)’를 내세우지만 연원이 불명확한 단체들.
- 주로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의 대동류와 접점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타케다 가문(타케다 신겐武田信玄 계통)의 다른 계보를 통해 전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 이런 대동류 관련 ‘3대 사이비 단체’는 ‘니혼덴’, ‘서향파’, ‘타케다류’를 꼽을 수 있으며, 대동류 혹은 합기를 자칭하는 연원이 불확실한 단체들은 대부분 이 세 곳을 뿌리로 하고 있다.
- 다른 분류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으나, 의도된 것이다.
타케다류 합기지술 (타케다류우아이키노쥬츠;武田流合気之術)
- 오오바 잇센(大庭一翁; 혹은 오오바 이치오오, 오오바 카츠오키)가 창시한, 팔광류에서 분파한 무술.
- 타케다류 측에서는 대동류와 마찬가지로 ‘타케다신겐(武田信玄)’에서부터 전해져온 무술이며, 소오카쿠와는 다른 루트로 전승되어온 무술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초대 오오바 잇센(大庭一翁)이 초대 오쿠야마 류호에게 팔광류를 배운 뒤 창시한 유파이다.
- 일본의 고류무술 연구가이자, 다수 유파의 무술을 전승하고 있는 무술가 오사노 쥰(小佐野淳)에 따르면,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 열었던 타케다류 초창기의 도장에서 오오바가 가르치던 기술은 팔광류 그 자체였다고 한다.
- 계통을 막론하고 본래 대동류에는 장술(杖術)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데(츠루야마 코오즈이의 ‘일본전 합기유술’ 제외), 오오바는 ‘쿠키신류(九鬼神流)’의 봉술(棒術)을 도입하여 타케다류의 장술(杖術)로 삼았다.
- 오오바의 외아들인 츠요시(剛之)도 타케다류를 수련하였으나, 1959년 오오바가 후사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탓에, 오오바 사후 약 10년 가까이 후계에 관한 혼란이 있었다. 결국 오오바의 외아들도, 오오바 생전에 사범대(師範代)로 본부 도장에서 오오바를 대리하여 지도를 담당했던 모리모토 카즈오(森本一雄)도 오오바의 뒤를 이어 타케다류의 대표가 되지는 못하였고, 현재 고무도 협회에 종가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이케다 카즈아키(池田一晶) 계통이다.
타케다류 나카무라파 아이키도(타케다류우 나카무라하 아이키도오;武田流中村派合気道)
- →타케다류에서 나카무라 히사시(中村久:2018/7/5 사망)가 독립하여 만든 유파.
- 나카무라가 초대 종가로, 타케다류에서 독립하며 많은 기술변형이 이루어졌다. ‘시합하는 합기도’를 표방하며 수도 공격을 위한 독특한 글러브를 착용하고 대련한다. 나카무라는 DVD를 출시하여 이름을 알린 바 있다.
무한류 아이키도(무겐류 아이키도오;無限流合気道)
- 타케다류와 키라쿠류 유술(気楽流柔術)을 바탕으로 오가와 카즈마사(小川和真正)가 창시한 무술.
- 아이키도(合気道) 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와는 관계가 없다.
- 합기무술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호쾌한 블럭 격파 시범이 유명하며, 자체적인 시합을 개최하기도 하고, 외부 시합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 격투기 선수와의 경기를 통해 유명해진 ‘야나기 류켄(柳龍拳)’의 계열
- 야나기에 대해는 호리카와 도장 출신이라는 증언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 야나기에 따르면 본인은 ‘코바야시 다이류우(小林大竜)에게 대동류 아이키도를 배웠다고 하며, 코바야시 다이류우는 타케다 류우코(武田龍虎)로부터 타케다류 합기술(武田流合気術)과 대동류 합기술(大東流合気術)을 배웠다고 주장하였으며, 본인의 무술 이름으로 대동류 합기술(大東流合気術)과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를 번갈아가며 사용하였다.
- 코바야시 다이류우의 대동류는, 타케다가의 가신이었던 오오히가시 큐우노스케(大東久之助)로부터 이어지는 무술로, 타케다 소오카쿠의 대동류합기유술이나, 오오바 잇센(大庭一翁)과는 무관한 계통임을 주장하고 있다.
- 일본 무술계에서는 우선 오오히가시 큐우노스케(大東久之助)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인물인지부터 의심하는 분위기이며, 오오히가시를 언급하는 유파가 있다면 우선 팔광류에서 파생된 오오바 잇센 계통이 아닌가 의심하고 보는 실정이다.
- 야나기는, 스승 코바야시 다이류우가 자신의 무술 을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 라는 이름으로 한 번 변경하였다가 다시, 옛 이름인 대동류 합기술(大東流合気術)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스승이 ‘대동류 아이키도(大東流合気道)’ 라는 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며, 스승을 ‘역파문(逆破門)’할 것을 선언한 바 있다.
- 코바야시 다이류우(小林大竜)가 출간한 서적에 나와 있는 기술을 보면, 현대적인 펀치와 킥(프론트, 미들은 물론 하이킥까지)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 논란과는 별개로 전통무술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동일 서적에서 마츠다덴(松田伝)의 특징적인 기술들이 마츠다덴에서만 사용하는 명칭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향파대동류합기무술(西郷派大東流合気武術)- ‘아이키 뉴스’의 편집장이면서 세계적인 아이키도 및 대동류 연구가로 활동하였던 고(故) 스탠리 프래닌 씨의 조사에 따르면, 서향파 종가 소가와 카즈오키 는 다음과 같이 몇 차례에 걸쳐 주장하는 내용을 바꿔왔다고 한다.
- 처음에는 ‘자신(소가와)의 스승(야마시타 호오에이)이 마츠다 토시미에게 대동류를 배웠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 이후 소가와는 본인이 ‘중국 기원의 대동류 권법’의 수행자라고 주장하였다.
- 이후 소가와는 다시 말을 바꾸어, ‘사이고 타노모(西郷頼母) – 사이고 시로(西郷四郎)로 이어진 무술을 배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 스탠리 씨는 상기한 소가와의 주장을, 각 시기별로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증명하고 논박하였다.
- 이처럼 서향파의 기원은 불분명하나, 최근 들어 타케다류 유래설이 대두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아이키 뉴스’의 편집장이면서 세계적인 아이키도 및 대동류 연구가로 활동하였던 고(故) 스탠리 프래닌 씨의 조사에 따르면, 서향파 종가 소가와 카즈오키 는 다음과 같이 몇 차례에 걸쳐 주장하는 내용을 바꿔왔다고 한다.
대일본 대동류합기무술 연합회(大日本大東流合気武術連合会)- 서향파에서 독립한 계열로, ‘대동류 합기무술 서향파 고류’의 종가 이치카와 요시노리(市川義則)와, 한무라 히데오, 야마모토 아야코를 대표로 하고 있다.
- 한무라 히데오는, ‘사이고 타노모와, 타케다 소오키치(소오카쿠의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한무라 이에스케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이치카와 요시노리는 이치카와 츠네미츠의 제자라고 하는데, 츠네미츠의 구체적인 사승에 대해서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 계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듯, 한때 연합회의 이름을 숨긴 채 ‘후지야마 도장’의 이름으로 호리카와 계열의 보쿠요오칸(牧羊館), 마츠다 계열의 렌신칸(練心館) 등 정통성 있는 조직의 문하로 들어갈 것을 청하며 정통성을 확보하려 노력하였으나, 후지야마 도장의 수련체계를 확인하고 수상함을 느낀 양측에 관계를 거부당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 캐나다와 쿠바를 주 활동지역으로 하고 있으며, 본부격인 캐나다의 후지야마 도장(Fujiyama Dojo)과 쿠바의 부신 도장(武心道場)을 운영하는 기예르모 머피 델 쿠에토(Guilleromo Murphy Del Cueto)는, 놀랍게도 쿠바에 일본 무술을 보급한 공로로 2024년 8월 1일 일본 외무대신 표창(外務大臣表彰)을 받았다.
타케다사이고오류 합기지술(武田西郷流合気之術)- 츠무라 케이지(津村恵治)가, 증조부인 ‘타케다 한시(武田範之)’ 계통의 무술을 이어받았음을 주장하여 공개한 무술.
- 타케다 한시라는 이름은 구한말-일제시대에 활약했던 대표적인 극우조직 천우협, 현양사, 흑룡회 등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로 유명하나, 동명이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에조치(蝦夷地 – 홋카이도와 사할린, 쿠릴열도 등을 포함)에서 일본인을 박해하던 제정(帝政) 러시아와 맞서 싸운 이력을 자랑스레 열거해놓은 것을 보자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메인 루트는 증조부 타케다 한시로부터 조부 사이고 시로(西郷四郎 – 津村定九郎), 조부로 부터 부친 츠무라 히로시(津村博)에게로 이어진 전승이나, 부친히로시가가 타케다 소오카쿠에게 입문하여, 양쪽의 전승을 모두 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사이고 시로는, 강도관 사천왕 – 야마아라시(山嵐)의 사이고 시로와는 동명이인이나, 츠무라 케이지는 양자간에 서로 친교가 깊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츠무라 케이지의 주장에 따르면, 큐슈 지역의 타케다류(武田流)나 사이고류(西郷流 – 정황상 서향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는, 모두 자신의 조부로 부터 이어진 전승이라고 한다.
- 타케다 소오카쿠와 우에시바 모리헤이간의 사이가 악화되자, 츠무라 케이지의 부친 츠무라 히로시와,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양자 우에시바 키요시(植芝清)간의 현피가 계획되었으나, 츠무라의 어머니 치에(千恵)의 개입으로 중지되었다고.
- 우에시바 키요시의 본명은 나카쿠라 키요시(中倉清). 검성(剣聖) 나카야마 하쿠도의(中山博道)의 문인으로, 검도, 거합도 모두 범사 9단을 받았다.
케이부류 합기체술(影武流合氣体術)- 아메미야 히로키(雨宮宏樹)를 종가로 하는 신흥 무술.
- 1520년 부터 아메미야 가문에 일자상전(一子相伝)으로 전해 내려온 가전의 체술(体術)에, 아메미야 히로키 개인이 수련해왔던 여러 무술을 결합하여 2010년에 새롭게 창시하였다고 한다.
- 타격 부분은 시스테마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많으며, 아메미야 본인이 시스테마 세미나에 수 차례 참가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 ‘합기(合気)’에 대해서는, 원래 가전무술에 있던 것은 아니고, 다른 무술에서 배운 것을 본인의 대(代)에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메미야 본인이 직접 시인하였다.
- 아메미야 가문에, 5백년간 전해내려온 가전 무술이 진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메미야 본인은 오카모토 세이고의 육방회에서 수련했다는 증언이 있으므로 육방회 계통으로 분류한다.
- ‘1520년부터 전해졌다’는 것이 무술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쉽게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술’, ‘유술의 원류(柔術の源流)’라고 불리는 ‘타케노우치류(竹内流)’가 성립된 것이 1532년이다. 즉, 맨손무술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유파로 지금까지 알려진 타케노우치류 보다도 13년은 더 일찍 아메미야 가문의 맨손무술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 참고로 최초로 ‘유술(柔術)’이란 말을 사용하고, 낙법[請身. 후에 受身로 변화]을 개발한 유파는 세키구치 신신류(関口新心流)인데, 이 유파를 창시한 세키구치 우지무네(関口氏心)가 1598년생이다.
- 유튜브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일본 국내에서도 ‘일자상전 가전 무술’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쇼오신류 합기무술(消陰流合気武術)- 아이키도, 중국무술, 대동류 등을 배웠다고 주장하는 1977년생 에노모토 야스히코(榎本康彦)가 창시한 신흥 유파.
- 스승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나, 이 계통에서 누구나 한 유명한 인물 두 명에게 대동류를 배웠다고 한다.
- 신체를 투명화=사라진 신체(消身)라는 개념을 통해 합기를 구현하여, 거합(居合)과 검술을 같은 원리로 구현한다고 한다.
- 합기연공숙(아이키렌코오쥬쿠;合気練功塾)
- 고등학교에서 25년여간 쇼린지켄포(少林寺拳法)를 지도하던 마츠바라 타츠노리(松原 辰典 )가, 본인의 지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도법과 신체내부감각을 단련하는 방법을 체계화하여 만든 도장.
- ‘합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대동류를 직접 수련한 경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